박정희 41

30년전에 작고한 여사가 88세에 남긴 멋진 뒷이야기

위대한 이승만정신은 언급하는 지도자가 없네요 슬픈현실속에 위대했던 그러나 잊어버리려고밀어내 버린 건국대통령 이야기를 다시 새겨봅니다 (30년전에 작고한 여사가 88세에 남긴 멋진 뒷이야기) 프랜세스카여사의 눈에 비친 이승만. 첫 만남 내나이 어느덧 올해로 만 여든여덟, 나 자신 내세울만한 공덕도 없이 아들 인수내외와 국민들의 보살핌 속에 이토록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어서 동작동의 남편 곁으로 가야될텐데 염치없이 더 오래 살고 싶은 핑계가 생긴다. 남편의 소원이던 남북통일, 우리 손자들이 더 장성하여 장가가는 것, 그리고 남편의 사료 및 유품전시관과 기념도서관이 건립되는 것 등을 지켜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사실을 그동안 많은 분들이 나에게 글을 써 달라고 ..

좋은글 2022.08.03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 석산 - 1973년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 1973년은 1차 오일 쇼크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이 멈췄던 해이다. 승승장구하던 미국,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사채동결조치” 때문이다. 믿기진 않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기업 현대와 삼성과 LG 같은 기업도 그 당시엔 모두 사채 빚에 허덕이며 밤마다 부도를 걱정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은행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국민들은 저축을 할 여유가 없으니 은행엔 돈이 없었고, 대부분의 돈은 일제 시절부터 어둠의 방..

좋은글 2022.07.29

독도를 지킨 자와 백두산을 버린 자

독도를 지킨 자와 백두산을 버린 자 박정희 한일협정이 물밑에서 논의되던 시기 일본은 한 명의 특사를 박정희에게 보낸다. 고토 마사유키...일본 육사의 박정희 선배이며 일본정계와 재계를 연결하던 최고의 우익 로비스트이자 다혈질적인 기질로 스스로를 쇼와 시대 최고의 사무라이라고 자칭하던 자이다. 거한의 체구와 특유의 거친 말투 그리고 매서운 눈빛으로 어떤 상대도 협박하여 설득시키고야 마는 사람이였다. 고토의 임무는 단 한가지였다. 731부대에서 기인하는 미도리 제약회사의 신기술을 이전하는 댓가로 독도를 뺏아오는 것. 이 고토를 보냄으로써 독도문제는 해결됐다고 보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정계에 팽배해졌다. 고토는 술을 먹으면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하였다. 죠센진토 이우 모노와 곤죠가 타리나이../ 조선 놈들이라고 ..

좋은글 2022.07.28

종교계가 소름끼치도록 조용하다.

코로나 시대에 집회를 금지하고 좌 편향된 불순세력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해도 한마디 항거도 못하고 침묵하는 모습에 반기를 든 한 수녀의 용감한 글을 실어봅니다. 와~ 절대 순종이 요구되는 카토릭에도 이런 용감한 여전사가 있었네요. 타락한 잘못된 제도에 항거하여 반기를 들었던 현대판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라 하겠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카토릭 만이 아니라 우리 개신교들도 귀담아 들어야할 심장을 후비는 비수 같은 말입니다. ‘종교계가 소름끼치도록 조용하다.’ (이인선 수녀가 좌파들이 득세하던 상황에서 카토릭을 비판하며 쓴 글) 나는 더 이상은 정의를 외면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다. 양들이 사지(死地)로 내몰리고 있는 처절한 상황 앞에서도 눈 귀 입을 닫은 목자들을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처자식 먹..

좋은글 2022.07.26

카이스트 탄생

가난한 나라에서 기술대국으로! 이런 사연이 있었네유 최형섭 원장은 미국을 돌며 젊은 과학자들에 게 “조국을 살려달라” 호소했는데 연구 인력을 모으는 것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초대 원장 최형섭은 미국을 돌며 한인 과학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돈이 없어 허름한 숙소에 묵으며 조국의 젊은 과학자들의 손을 붙들고 호소했다. “가난한 조국은 당신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정성이 통했음인지 첫해인 1966년 18명이 귀국한 후 1990년까지 영구 귀국한 과학자가 1,000명을 넘었다. 귀국 과학자들은 당시 국립대 교수 연봉의 3배를 받았지만, 그것도 미국에 있을 때의 절반이 안됐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이들을 흘겨보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서울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귀..

좋은글 2022.07.13

가슴 뭉클한 박정희 대통령 명연설‼

가슴 뭉클한 박정희 대통령 명연설 ● 《53년전 대국민 담화문 중에서》 내가 해 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야당은 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오늘까지 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 지지나 격려도 받아보지 못한 채, 오로지 극한적 반대 속에서 막중한 국정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하여, 나는 야당으로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으며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고 하여, "젊은 이의 피를 판다"고 악담을 하였습니다. 없는 나라에서 남의 돈이라도 빌려 와서 경제건설을 서둘러 보겠다는 나의 노력에 대하여 그들은 "차관 망국"이라고 비난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 창설한다고 하여, 그들은 국토방위를 "정치적 이용을 꾀한다"고 모함하고, 국토의 대동맥을 뚫는 고속도로 건설을 그들은 "국토의 해체"라고..

좋은글 2022.07.07

대한민국을 일으킨 영웅들

대한민국을 일으킨 영웅들 !!! 박정희 대통령의 執念 이병철 회장의 蕙眼 정주영 회장의 推進力 김우중 회장의 世界化가 이룬 奇蹟 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에 감사하지않고 비판만하는 우리국민들, 정치인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모두 아래 3개의 글을 꼭 읽으시고 감사하며 자유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는데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 우리나라에 三星이없다면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을 치르고 있을 정도로 반도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른다. 무려 50%가량 부족하다고 한다. 이 반도체는 모든 산업의 감초 역할을 한다. 감초가 없으면 한약을 지을수 없듯이 반도체가 없다면 모든 제품의 생산이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은 말할것도 없고 전자 통신 항공 선박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필수부품이..

좋은글 2021.12.26

박정희 대통령 서거 42주년 추도사

박정희 대통령 서거 42주년 추도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42년 전 오늘, 당신께서는 충격적으로 저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날 저는 한일공업 노동조합 분회장으로서, 출근길 지하철 바닥에 뿌려지는, “박정희대통령 유고” 호외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유신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되겠구나”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로 무기정학 되었습니다. 교련반대, 유신반대로 대학을 두 번 쫓겨났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히틀러의 아우토반처럼 독재 강화의 수단이라는 운동권 선배들의 가르침대로 저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36년 뒤 제가 도지사가 되어서야, 경기북부 낙후지역 발전을 위해서 고속도로 건설이 필수적임을 깨닫고, 당신의 선견지명에 반대했던 제가..

좋은글 2021.10.29

그차가 아버지 차냐?

박정희! "그차가 아버지 차냐?"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인 김병희 전 인하공대 학장의 회고록에서 전재한 것이다. 의장실에 무상출입 하게 된 나는 30년 지기였건만, 인간 박 정희의 새로운 편모(片貌)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장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특별한 기물도 없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가 앉는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손님용 나무 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 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미국제 "바이스로이"..

좋은글 2021.07.31

56년전 소중한 이야기 한토막

56년전 소중한 이야기 한토막 ------------------------------------------------ 독일은 우리나라 광부(鑛夫)들이 독일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이웃나라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등 인건비 싸구려 국가에서 수 많은 광부들을 수입하여 일을 시켜본 경험이있는 나라 입나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데리고 온 광부들은 아주 나태(懶怠)하였고 생산성이 아주 낮아 결국 광산을 폐쇄(閉鎖)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는 독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데리고 온 광부들이 투입(投入)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를 두배로 올리고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與論)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당시 서독..

좋은글 202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