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두 눈 똑바로 보며 임산부 죽인다고?...전쟁 못 본 좌파들 망상"

거짓 없는 진실 2023. 2. 20. 19:27

"두 눈 똑바로 보며 임산부 죽인다고?...전쟁 못 본 좌파들 망상"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실을 말한다]
② 한겨레 보도에 분노하는 '그날'의 증언-이화종 월남전 참전자회 회장

베트콩 포로들도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쏜 사람 단 한명도 없어
전진 매복작전 중 수상한 사람 발견해도 함부로 공격하면 '사형'


1968년 베트남 주둔 십자성 부대 앞에 서 있던 간판. 채명신 당시 주월사령관의 훈시 내용이다. /파월용사 블로그 포토갤러리 제공
한겨레를 필두로 좌파 진영은 "베트남전에서 우리 군인이 총칼로 임산부와 어린아이까지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전 참전자들은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절대 못 한다"고 반박한다. 참전자들은 그러면서 "전쟁터를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의 공상"이라고 좌파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월남전 참전자회 이화종 회장은 "당시 우리 군 장병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며 베트남전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이 회장이 교전 지역에 배속됐을 때 마침 중대 진지에 포로로 잡은 베트콩(NLF·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있었다. 선임병들은 그에게 "야, 저놈 찔러 죽여! 괜찮아, 내가 책임 다 질게"라며 대검을 건넸다. 선임병들은 "못 죽이면 네가 죽는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그는 베트콩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었다.

이화종 회장은 "신병이 올 때마다 선임병이 그렇게 놀려댔는데 제가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 이전이나 이후로도 베트콩 포로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끼리는 장난이었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그 베트콩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눈으로 쳐다봤다"면서 "저는 지금도 그 (베트콩의) 눈동자를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는 베트콩도 어떻게 못 했던 우리 장병이 어린아이와 임산부를 칼로 찔러 죽인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저항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게 학살"이라며 "우리 장병이 70~80명을 모아 놓고 살해했다면 당시 베트남에 모여 있던 외신들부터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퐁니·퐁넛 마을 일대에서 3개월 동안 교전을 치른 뒤 헌병대 행정병으로 배속됐다. 남은 베트남 근무 9개월 동안 그는 현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국군을 국내로 후송하는 작업도 했다. 이 회장은 자신이 헌병대 행정병으로 근무하던 9개월 동안 민간인을 살해해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 나갔던 8년 8개월 동안 전쟁범죄로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이 총 42명이었는데 대부분 부대 내에서 사고를 일으켰지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인을 살해했다면 당연히 사형"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발적 살인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작전을 다녀왔다. 총은 실탄이 장전돼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로 긴장해 있다. 이때 선임병이나 상급자가 기합이 빠졌으니 뭐니 하며 욕설하거나 가혹행위를 하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라며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학살’로 부를 만한 사건은 1건이라고 그는 말했다. 1968년 4월 비둘기부대 소속 A 소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적진으로 매복 작전에 들어갔다. A 소위와 소대원은 새벽 1시 거동이 수상한 베트남 사람 7명을 발견했다. A 소위와 소대원은 이들이 베트콩이라고 보고 공격을 가해 6명을 사살했다. 생포한 1명은 "우리는 베트콩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사상자와 그 주변에서 무기는 찾지 못했다. 결국 A소위는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았다. A 소위는 국내로 호송됐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고 15년 징역형을 살고 출소했다.

적진에서 매복 작전을 벌이는 도중 새벽 1시에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어도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사형 선고를 받는 게 베트남전 당시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금도 그 사람은 억울해 죽는다"고 전했다.

출처 : 자유일보(https://www.jayu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