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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위에 붙은 파리의 허세

거짓 없는 진실 2024. 9. 10. 18:53

[ 마차 위에 붙은 파리의 허세 ]

나는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광경이나 
문화평론가 김갑수씨의 말을 들으면서 
그 용기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비난도 개의치 않고 
세상의 흐름에 역류하기도 하면서 
소신을 강하게 말하는 모습이다. 
그런 분들이 곳곳에 나타나 
이 사회가 선동이나 허위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배의 바닥짐 같은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 산책을 하다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평론가 김갑수씨가 하는 말 중에 
“일제에 빌붙은 자들”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친일파에 대한 그의 관념을 압축한 것 같았다. 

예전에 나는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사참배하고 
일본인들 밑에서 순종하던 사람들이 
친일파인 줄 알았다. 
일제에 빌붙어서 부자가 된 무리를 
좀 더 농도 짙은 친일파로 간주했었다. 
그러다가 
친일파에 대한 소송을 맡게 된 계기로 
일제시대나 해방 무렵의 자료들을 보면서 
나의 인식이 너무 가벼웠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일 전 
사회 원로인 조갑제씨로 부터 
일제시대를 살아온 한 노인이 쓴 짧은 글을 받았다. 
노인은 
천구백사십오년 시월 이십일경 
그 글을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보냈다고 했다. 
친일파 척결의 여론이 높아질 때 얘기인 것 같았다. 
그 핵심 내용은 이랬다. 

< 친일파라고 
함부로 남에게 오명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일본에 병합됐던 삼십사년간 
조선의 위상은 어땠습니까? 
독립적인 왕국이었나요? 
아니요. 
조선은 일본의 일부였고 미국등 세계열강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즉 조선인은 
좋든 싫든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딸을 공장에 보내야만 했는데 
무슨 수로 군국주의자들의 명령과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될 것으로 봅니다. 

해방이 되자 
갑자기 나타난 애국자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힘과 용맹성을 가지고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조선을 구해내기라도 한 것 처럼 
구세주 행세를 하며 으스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허세와 자만에 찬 ‘애국자’들이 
일본을 몰아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해방이란 
단지 연합군 승리의 한 부분으로 
우리에게 온 것 뿐입니다. 
만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이 가짜 애국자들은 
계속 궁성요배를 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읊었을 것입니다. 
이 허풍쟁이들은 
우화에 나오는 어리석은 파리처럼 
다시 말해서 
달리는 마차 위에 내려앉아 있으면서 
‘이 마차는 
내 힘으로 굴러가고 있다’라고 외치는 
파리처럼 
이야기 하고 다니는 것 뿐입니다.> 

그 시절에도 
과거의 운동경력을 자랑하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노인은 
자신의 정치적 식견을 담은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 듣자니 
사람들이 모여 민주 정부 운영에 관해 거론을 한다는데 
내게는 마치 
여섯살 난 어린아이가 
자동차 운전이나 비행기 조종에 관해 말하는 것 처럼 들립니다. 
우리 조선인은 
전형적인 민주주의나 
급진적인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정치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형식과 구호만을 내세우며 
국민을 선동하는 무리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잔학하고 불합리한 이념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은 
교육도 받지 못했고 훈련도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방종을 자유로 
강탈을 공산주의로 오해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굳센 손과 
이타적인 헌신으로 
국민을 한마음으로 묶을 유력자 말입니다. 
사소한 개인적 야심과 
당파적인 음모와 
지역간의 증오심일랑 모두 묻어두고 
우리는 
다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현인의 글 같았다. 
나이 먹은 그 노인은 
고종이나 민비를 만나 보고 
못마땅했던 점을 
자신의 일기에 직접 써놓기도 했었다. 
일제시대에도 
해방 후도 
일관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그는 일제시대 
우리 민족이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는 게 현실이라면 
차라리 군대에 자진해 가서 
군사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했었다. 
그 말이 씨가 되어 
해방후 그는 친일파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역사적 심판의 권한을 독점하고 
모든 걸 이분법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누가 
그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힌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 엄 상 익  /  변 호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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