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머니의 유언(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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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씀이였기에 그리
눈물 나게 했을까요.
단 열네 줄로 쓰신 어느 어머니의 유서(遺書)를 읽으면서
눈자위를 맴도는 눈물을
삭히기가 어려웠습니다.
자려고 누워서도
유서의 말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곤했습니다.
그다지 가져보지 못한
눈물인 것 같습니다.
그 유서의 전문(前文)은
이러했습니다.
(전체가 열네줄이라 했는데
여기 올리면서 몇 줄이 더
늘어났음을 알려드립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子息)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世上)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그 눈길에
참 행복(幸福)했다네.
지아비 잃고 세상이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수 있게 해 줌도 자네들이었네.
병(病)들어 하나님이 부르실 때,
🍎곱게 갈수 있게
내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熱心)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
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을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工夫)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사랑하는 엄마가.
위 글은
사십대(四十代) 초반(初盤)에 공무원(公務員)이던 남편(男便)을 일찍 떠나보내고,
35년간(年間)을 홀로
오직 일녀삼남(一女三男) 자식들만 바라며 살아온 어느 어머니의 유서(遺書)입니다.
78세(歲)에 난소암(卵巢癌)을 얻어 투병(鬪病)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 유언(遺言)이 공개(公開)된 장례식장(葬禮式場)은
흥건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이 그토록
눈물겹게 했을까요?
우선(于先) 자식들을 두고
''자네’'라고 부르는
2인칭(人稱) 대명사(代名詞)가
눈물겹다고 했습니다.
친구(親舊)나
아랫사람을 대우(待遇)하여 이르는
'자네’라는 말 속에는
자식(子息)을 끔찍하게 위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극진(極盡)한 마음이 녹아 있기때문이 아닐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머니로서
당연(當然)한 것이겠지만,
요즈음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때문입니다.
떠올리기조차 꺼려지는 일이지만, 부모(父母)의 학대(虐待)로
어린 자식이 무도(無道)한
지경(地境)에까지 이르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까!!.
자식을 귀하게 대우하는
어머니 임에야
자식인들 어찌 바른 성정(性情)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언(遺言) 속을 들여다보면
자식의 어머니를 위한 지성(至誠)도 예사롭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식들의 치성(致誠)이
고맙기도 했겠지만,
그 ‘고마움’은
그것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어미'라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고,
젖 배불리 먹고
어미를 바라보는 그 눈길이 행복(幸福)을 주어 고맙고,
지아비 잃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어 고맙고,
세상 떠날 때
곱게 갈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습니다.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거저 내 자식인 것만으로도,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는
무위(無爲)의 사랑이
눈물샘을 울컥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노자(老子)가 말한
낳아주되 제 것으로 갖지 않고,
위해주되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고,
자라게 해 주되 간섭하지 않는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부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와 같은
사랑이라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노자(老子)는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했습니다.
<'‘인간(人間)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길 없는 묘한 도덕(道德)’'> 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어머니는,
당신이 있어
자식이 잘 산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잘 살았다 했고,
당신이 자식을
열심(熱心)히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했습니다.
당신 삶의 모든 공(功)을
자식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두고 노자(老子)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라 했는데
'공(功)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이는 곧
‘자연(自然)의 일'이라 했습니다.
자연이
만물(萬物)을 대하는 이치(理致)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 어머니의 사랑이 이와 같을진대 이보다 더
순수(純粹)하고
숭고(崇高)한 사랑이 또 있을까요?
그 순수(純粹)와 숭고(崇高)가
다시
눈물샘을 솟구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어머니는
일녀삼남을 일일이 다 부르면서
제 노릇하며 사느라고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느냐고
오히려 위로해 주며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면서 자식(子息)들을 토닥이고 있습니다.
이에 이르러
방울같은 굵은 눈물을
지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하물며 그 자식들은
어떠하였을까요?
이 유언(遺言)을 들으면서
자식들이 흐느낀 울음이며
세상(世上) 사람들이 지은
눈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물론(勿論) 말할수 없이
지극(至極)한 자애(慈愛)에 대한
깊은 감동(감동)의 눈물일 것입니다.
부모(父母)의 자식(子息)에 대한 애정(愛情)이며,
자식의 부모에 대한 경애심(敬愛心) 이 점점 흐려지고 거칠어져 가는
세태(世態)가 돌아보일수록
이 유언에 어린 감동이
더할 나위 없는 큰 울림으로
새겨져 옵니다.
어찌 감동(감동)으로만 끝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누구든
자신(自身)의 삶을 한번
돌아 보이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내가
생(生)의 종언(終焉)을
앞두게 되었을 때,
무슨 말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나는 이 어머니만한 지성(至誠)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면
민연(憫然)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런 말을
남길 수가 있을까.
내가 못한 것을 너희들은
잘 해달라는 구차한 말조차도 남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이 어머니의 유서가
다시 눈물겹습니다.
내 살아온 자취(自取)가
더욱 눈물겹습니다.
우리네 부모님은 다 이렇게
사셨는가 입니다
-홍정흠-
카톡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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