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아! 워커 장군님, 당신은 대한 민국의 영원한 영웅이십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3. 6. 27. 10:54

  
아! 워커 장군님, 당신은 대한 민국의 영원한 영웅이십니다.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은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제 1등 공신이지만, 많은 한국인들
은 그가 누구인지를 잘 모를 것이다. 

한국전쟁 초기 북괴군이 남침해 파죽지세로,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을 때, 일본에 있던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조차 이제 한국을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맥아더 장군 뒤에는 미국 정치권의 압박이 있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한국이 또 하나의 대만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의 '대만화' 후보지 중, 제주도는 식수 문제와 척박한 토양 때문에 고려될 수 없었고, 피난민 한국인들을 배에 실어 남태평양의 서사모아에 이주시키는 New Korea Plan을 내놓기에까지 이르렀던 그야말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지칫 한국이라는 나라가 역사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백척간두의 위기속에서 오직 홀로 '한국 절대사수'를 외친 사람이 바로 워커 중장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고,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워커 장군은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
까지 걸겠다며 미군 장병들.의 전투를 독려했다.

그래서 낙동강 전선은 '워커 라인'이 되었고, 그는 한국의 육군본부가 최후방인 부산까지 내려간 상황에서도 미 8군사령부를 최전방인 대구에 유지하며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본국에서는 미국도 아닌 나라를 위해 미군 장병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하는 반전(反戰) 여론이 들끓었지만, 맥아더 사령관은 "군대에서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로 워커 중장을 옹호해줬다.

워커 중장은 북괴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전선에 포탄이 작렬하는 상황에서도 전선을 두루 돌며 전투를 독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Stand or Die.(지키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한반도의 공산화는 자명한 일이었던 상황에서 그의 투혼으로 결국 인천 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한국군이 북진할 무렵인 1950년 12월 23일, 워커 중장은 그와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 샘 워커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하러 가던 중, 경기도 양주군(지금의 도봉구)의 어느 도로에서 한국군 운전병의 실수로 벌어진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만다. 워커 장군의 유족들의 탄원으로 그 운전병은 처벌을 면했다.

아들 샘 워커는 부친상을 치르라는 미국 정부의 특별휴가도 거절하고, 아버지의 뜻을 지키겠다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선을 지켰다. 워커 중장은 대장으로 추서되었고, 아들 샘 워커 대위도 훌륭한 군생활로 나중 대장까지 승진하여 영예로운 집안이 된 것이다. 이들 부자는 오늘날 한국이 있게 한 최대 공헌자였고, 그들의 공로를 기념하고자 오늘날 "워커 힐"이라는 곳을 지정하게 된 것이다. 워커 대장을 잘 모르는 사람도 '워커 힐'이라는 곳은 대부분 안다.

그런데 잘 아시는 대로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1918.2) 평창 동계올림픽 때에, 북한의 김여정과 김영남이 내려와 묵은 곳이 '워커 힐'호텔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워커 힐 호텔에서 한국전쟁 당시 수백만의 사상자를 냈으며, 국토를 초토화 시켰던 전범 김일성의 손녀 김여정과 당시 총구를 들이댔던 김영남이 군왕급 의전을 받으며 묵었고, 그 이틀 뒤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 김영철도 워커 힐에서 묵었었다.

왜 하필이면 워커 대장의 이름을 기리고자 명명했던 '워커 힐'에서 전쟁 범죄자와 관련된 자들을 묵게했던 것일까? 이것은 우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우리나라를 지키다가 순직한 워커대장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우리  모두에게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다.우리는 문재
인 네놈 쌍판만 봐도 싫다.빨
리 교도소에 들어 갔음 한다.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이 땅에서, 자기 나라도 아닌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영웅들이, 6.25때가 되면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한 없는 고마움과 보은을 다하지 못한 빚진 자로서의 당연한 책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아침 낙동강 전선을 누볐던 워커 장군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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