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4

퇴계난택(退溪難擇)

(해)퇴계난택(退溪難擇) : 퇴계(退溪)선생의 어려운 선택 글 자 : 退(물러날 퇴) 溪(시내 계) 難(어려울 난) 擇(가릴 택) ※비 유 : 엄격한 윤리, 도덕보다 인간의 따뜻한 정(情)이 더 진함의 비유 ●퇴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 채(寀)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 김해 허씨를 여의고 주로 외가(의령)에서 성장하면서 건강이 나빠 퇴계가 •단양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48세 2월)에 *정혼만 해놓은 상태에서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채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전임한 퇴계는 직책을 사임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좋은글 2024.08.23

여민동락(與民同樂)

● 여민동락(與民同樂)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 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일찌기 영의정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이 퇴계를 만나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갔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한 만고 권률장군의 아버님이기도 하다. 권률장군은 선조 때의 명재상이었던 이항복의 장인 이기도 했다. 서울서 예안까지는 5백50리의 머나먼 길이다. 영의정까지 지낸 사람이 머나먼 길에 일개 사숙의 훈장을 몸소 찾아 온다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철은 퇴계를 친히 방문하기로 했던것. 도산서당에 도착 하자 퇴계는 동구 밖까지 예의를 갖추어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두 學者..

좋은글 2023.08.28

퇴계(退溪)의 연정(戀情)

♥️ 퇴계(退溪)의 연정(戀情) ♥️ °°°°°°°°°°°°°°°°°°°°°°°°°°°°°°°°°°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황(李滉)은 아호(雅號)가 퇴계(退溪)였습니다. 그의 70년 생애(生涯) 동안 (1501년/연산군7~1570년/선조4년 ) 조선(朝鮮) 중기(中期) 학자(學者)로 또 문신(文臣)으로 유교적(儒敎的) 법도(法道)에 충실했던 그에게도 젊은 한 여인을 향한 애정어린 한 편의 전설같은 숨은 이야기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48세(歲)때 경치 좋은 단양(丹陽) 군수(郡守)로 부임(赴任) 했는데, 그 고을의 관기(官妓)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을 만나게 됩니다. 두향은 첫 눈에 대나무처럼 올곧은 퇴계를 연모(戀慕)하게 되었고, 퇴계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좋은글 2022.11.18

퇴계 이황 선생과 영의정 권철 대감의 逸話"

퇴계 이황 선생과 영의정 권철 대감의 逸話"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일찌기 영의정(領議政)의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쌍취헌 권철(雙翠軒 權轍)이 서울서 퇴계를 만나보고자 도산서당을 찾아 내려오게 되었다. 권철은 그 자신이 영의정의 벼슬까지 지낸 사람인 데다가 그는 후일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여 만고명장(萬古名將)의 이름을 떨친 권률(權慄) 장군의 친아버님이기도 했었고, 선조 때의 명재상(名宰相)이었던 백사 이항복(白沙李恒福)의 장인 영감이기도 했다. 권철은 워낙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남달리 투철하여 불한당(不汗黨)이나 다름 없었던 소년 이항복의 사람됨을 진작부터 알아보고, 온 門中이 극력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우겨..

좋은글 2022.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