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3

이어령 교수의 후회

**이어령 교수의 후회**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문필가로 교수로, 장관으로 활동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겸손이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그것을 항상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에서 남긴 말이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야 그 삶이 풍성해진다. 나이 차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함께 만나 얘기 할 수 있는 사..

좋은글 2024.02.07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이어령교수에 대한 이야기

샬롬. 축복합니다. 시월의 첫날에 주님의 은혜로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이어령교수에 대한 이야기 일부를 드릴까합니다. 70평생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본적이 없던 그가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앞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외로운 삶이었겠습니까? 혼자 바들바들하면서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너무 적적할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손으로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아!..

좋은글 2023.10.02

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몇몇 고교 선배들과 만나는 모임에서였다. 선배 한분이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이어령 교수였어. 아직 이십대의 천재 선생이 칠판에 두보의 시를 써 놓고 해설을 하는데 황홀했었지.” 경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대학으로 옮겨 교수가 되고 대한민국의 지성의 아이콘이 됐다. 그리고 돌아가신지 세달이 됐다. 말하던 그 선배가 덧붙였다. “그 양반은 낮았던 대한민국의 정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거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 나라마다 민족의 나침반이 된 천재들이 있다.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화 무렵 일본의 방향을 서구화와 민족주의로 잡고 교육에 헌신했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인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고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남겼었다. 이어령 교수도..

좋은글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