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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공명정대한 그리스도적 실천이다

거짓 없는 진실 2023. 1. 29. 19:33


* 정의는 구호나 외침이 아니다.
정의는 공명정대한 그리스도적 실천이다 *

[조폭과 변호사]

ㆍ이야기 하나.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

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 무대로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시카고 '아웃 핏 (Chi
cago Outfit)'의 갱단 두목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미국 서부에까지 미쳤으며
'밤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던 악명 높은인물입니다.

1927년엔 '한 해 총세입이 1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의 시민' 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부를 축적했으며,

또한 그 시절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알려지기까지 하는 

사회적 부조리함도 동시에 보여 주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알 카포네는 
이지 에디 (Easy Eddie)란 애칭으로 불리던 아이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자신의신분을 호도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이지의 해박한 법률 지식과 법리는 악랄한 범죄자 알 카포네를 변호해 그를 감옥에 가는 걸 막아 주는 합법을 가장한 
범법 변호사로 건재(?)했던 것입니다.

알 카포네는 그의 의리에 보답하는 대가로 에디 변호사에게 거금의 연봉을 지불하는 한편,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커다란 저택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 할 수 있게끔 예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의 웅장한 성채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겠금 경제적 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에디에게 양심의 가책과 함께 불안과 깊은 고민에 빠지면서 정신적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처럼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을 살지는 않을까 하는 인간 본연의 부성애적 
고뇌에 신앙적 갈등이 겹쳤던 것입니다.
깨끗한 양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신앙적 양심이 심연에서
작동했던 것입니다.

대대로 깨끗하고 빛나는 신앙을 지켜온 가문의 명예와 사회 정의에 모범이 되는 올곧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양심이 에디 변호사에게 되살아나면서 그를 회개의 자리에 앉게 하신 이가 주님이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기에 이릅니다.

마피아 두목을 고발할 경우 치루어야 할 대가가 얼마나 처참하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에디 변호사였지만 오로지 자신의 죄과를 주님 앞에 참회로서 청산하고, 아들에게 인간애와 정의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과 자기의 범법 행위를 

낱낱이 폭로하고 고발해야 하겠다는마음을 주저 앉지 못했습니다.
정의 바로 세우기였습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에 의해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포착하지 못했던 알 카포네의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게
되었고  범죄 조직,살인,약탈,방화,린치,탈세 등의 혐의로 갱 일당을 구속 송치합니다.
드디어 시카고는  알 카포네 일당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아 갔습니다.

한편, 그 해가 끝나기도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 몸에 총탄 세례를 받고 생을을 마감합니다. 
이미 예고되었던 비극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그와 가족이 믿었더 신앙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고 
아들에게는 위대한 ‘정의’의 선물을 유산으로 남기고 갔습니다.
은혜입니다.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의 그에게서 몇 가지 물건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에디 변호사의 주머니 속에 든 묵주와 십자가, 그리고 잡지에서 오려낸 어떤 시 구절이었습니다.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ㆍ이야기 둘.
1941년 12월 8일, 일본 해군이 미국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수행 명령을 받았습니다.
전투기가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은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그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오헤어는 뭔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려고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두 출격해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소속 편대에 연락하여 함대로 귀환시켜 모함을 구할 시간일랑 전혀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 조차 할 수 없는 초분이 다급한 초비상사태였던 것입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어떻게든 모함 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전술 뿐이었습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하여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습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향해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으며, 적의 무너진 진영 사이를 누비면서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기에 총탄를 퍼부었습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 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작전했습니다. 
마침내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려 퇴각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누더기가 된 그의 전투기를 몰고 항공모함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던 오헤어 중위!
도착하자마자 그는 지휘관에게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고를합니다.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은 이 공중전의 전모를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승전보!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지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음은 물론입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탄 구멍 하나만 있을 뿐, 의외로 기체가 멀쩡했다고
하니 가히 영웅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 (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서훈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을 특진, 소령으로 진급합니다.

그리고 1945년 6월 22일, 영웅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구축함 (Gearing-class destroyer)에 

USS 오헤어 (USS O'Hare) 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영광을 얻습니다.

덩치가 워낙 커 ‘Butch’ O’Hare‘ 란 별칭으로 불린 이 조종사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Edward Henry O’Hare (1914~1943)입니다. 
부치 오헤어는 훈장을 받은 1년 후, 태평양전쟁의 한 공중 전에서 분투 끝에 장렬히 산화를 
하였습니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제2차 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49년 9월 19일에,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 (Chicago)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

으로 개명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ㆍ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였던 '이지 에디'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 (Edward Joseph O'Hare, 1893~1939)이고, 부치 오헤어 소령은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 주려 했던 에디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까요!!!

나는 이 시간, 정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 부자(父子)의 삶을 깊이 생각하며 

[박애와 정의의 상실시대]에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과연 나에게 박애와 정의는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모스에게, 그리고 선지자 미가에게 말씀하셨던 그 정의는 

지금 나의 양심 어느 자리에 얼마 만큼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자식들에게 가르치지도 보이지도 못했던 부끄로움...

너무 수치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 채 파묻고 참회하고 또 참회합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사랑과 정의의 양 날개로  자유로이 날고 날게 하는
한 마리 새로 거듭나게 하소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
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6:7).

용인 석성산 
기슭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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