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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낮엔 찬란한 별을 볼 수 없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5. 7. 3. 10:27

[열린편지] 밝은 낮엔 찬란한 별을 볼 수 없습니다

온몸을 집어삼킬 듯 포효하는 거대한 파도, 칠흑 같은 물의 장벽이 무서운 속도로 밀려옵니다. 해변의 모두가 숨을 죽인 순간, 단 한 사람, 파도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청년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두 눈은 세상의 빛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시각장애인 서퍼, 데릭 라벨로. 그는 눈이 아닌 온몸의 감각으로 파도의 숨결을 읽고, 영혼의 눈으로 물의 흐름을 봅니다.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는 전설적인 서퍼의 이름을 지어주며 꿈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아이가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났을 때도, 그는 아들의 세상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들의 가슴 깊은 곳에 ‘믿음’이라는 또 다른 눈을 선물했습니다. 데릭은 그 믿음의 눈으로 불가능의 파도를 보았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하와이 파이프라인의 물결을 가르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겸손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재능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여기, 또 한 명의 청년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보지 못했고, 자폐라는 침묵의 벽에 갇혔던 크리스토퍼 더플리. 500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는 절망의 한가운데, 고모는 그를 품에 안으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불렀습니다. 그녀는 굳게 닫힌 조카의 세상에 ‘음악’이라는 열쇠를 조심스레 쥐여주었습니다.

어느 날, 피아노 선율 위로 크리스토퍼의 목소리가 처음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린 찬양이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수많은 사람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었고, 절망의 그늘에 주저앉은 이들을 일으키는 희망과 위로의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고모의 말처럼,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본다는 것은, 눈이 아닌 온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데릭과 크리스토퍼. 두 청년의 삶은 우리에게 ‘본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우리는 두 눈으로 세상의 많은 것을 본다고 믿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조건과 환경,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쉽게 주저앉고, 내면의 소리를 잃어버린 채 침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작은 불편 앞에서는 쉽게 불평하면서도, 정작 우리 안에 심어주신 무한한 가능성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은 보지 못하는 ‘영적인 시각장애’를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장애는 보지 못하는 눈이 아니라, 보려 하지 않는 불신의 마음입니다.

두 청년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육체의 눈이 감길 때, 비로소 영혼의 눈이 뜨인다는 것을. 세상의 소음이 멈출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린다는 것을. 나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의 삶이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가로막는 절망의 파도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목소리를 앗아간 침묵의 벽은 얼마나 높습니까? 이제 세상의 기준을 향해 있던 우리의 눈을 잠시 감고, 믿음의 눈을 뜰 시간입니다. 나의 가장 약한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시간입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눈이 멀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절벽 같은 세상을 기적의 무대로 만든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9)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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