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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바닥이 단단할수록 더 높이 솟아오릅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5. 7. 3. 10:30

[열린편지] 공은 바닥이 단단할수록 더 높이 솟아오릅니다

삐걱거리는 문, 성글게 들어오는 햇살 아래 먼지가 흩날리는 예배당. 한때 168명을 품었던 의자는 대부분 주인을 잃었고, 그 넓은 공간을 채우는 것은 희미한 등불과 나직한 기도 소리뿐이었습니다. 1873년, 13명의 소박한 믿음으로 시작했던 멘로(Menlo) 교회의 50년 후 모습입니다. 전쟁의 여파, 전후 인구 감소 및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져 미래를 향한 소망은 빛이 바랬고, 남은 것은 단 7명의 성도. 누군가는 ‘실패’라 말했고, 또 누군가는 이제 교회의 문을 닫을 때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 남은 7명은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에 무릎 꿇기보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18년 동안 아이가 없던 부부가 이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습니다. 남편은 기적처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에 다니던 중에 하나님의 선물 같았던 아이는 15살의 어린 나이에 장티푸스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의 이유이자 미래 그 자체였던 아들을 잃은 부부의 세상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부는 슬퍼하며 기도했고, 아들이 죽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슬퍼하는 부부에게 다른 아이들을 돕는 꿈을 주셨습니다. 부부는 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든 아이가 우리의 자식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885년, 두 사람은 대학 설립을 위한 법안과 기금을 주 법원에 제출했고, 이로써 아들의 이름을 붙여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공식 설립되어 1891년 10월 1일 첫 학기 개강을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한 부부의 사무치는 슬픔으로 탄생한 학교가 바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심장이자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요람, 스탠포드 대학교(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입니다. 제인 스탠포드는 Menlo 교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으며, 제인은 1903년 아들의 죽음과 남편 추모를 기념하며, 학내 중심 부지에 Memorial Church를 건립했습니다.

멘로 교회는 훗날 수천 명이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했지만, 교회의 가장 위대한 역사는 화려하게 부흥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단 일곱 명이 남아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붙들며 눈물로 기도하던 그때, 가장 연약했던 그 순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한 부부의 찢긴 마음에 하나님의 비전을 심는 통로가 되었고, 꺼져가던 절망의 불씨를 희망의 횃불로 바꾸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삶을 바로잡을 용기>라는 책의 저자 존 오트버그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을 “나의 길에 중독된 나를 고치시는 하나님”라고 말하며 인간이 “하지만 나는...”이라고 변명할 때 하나님은 “하지만 하나님은...”이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창17:5,17)
“모세야, 바로에게 가라.” “하지만 나는 말주변이 너무 없습니다.”(출4:10)
“기드온아, 내 백성을 미디안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라.” “하지만 나는 내 가문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삿 6:15)
“예레미야야, 내 선지자가 되라.” “하지만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 나는 어린 자에 불과합니다.”(렘1:6)
“에스더야, 왕에게 가서 내 백성을 구하라.” “하지만 나는 30일간 왕에게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에 4:11)
 “베드로야, 반대편에 그물을 던져라.” “하지만 나는 이미 밤새 그물을 던졌습니다.”(눅5:5)
이럴 때 “하지만 하나님은…”이라고 접근하면 우리의 부족함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지만’보다 크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이라는 식으로 부족함을 핑계 삼아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거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과 “하지만 하나님은…” 중에서 무엇을 말하기로 선택할 것인지는 개인의 용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아 중독으로 인생을 살 것인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인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50:20)라고 선택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73:26)라고 선택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만하면 실패했다고 주저앉은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나의 계획이 산산조각 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고, 나의 힘이 모두 소진된 그 자리에서 그분의 진짜 능력이 나타납니다. 혹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신가요? 소중한 것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나요? 기억하세요. 당신이 가장 연약해진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가장 위대한 역사를 쓰기 시작하실 무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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