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로(蛙利鷺)의 내력(來歷)?
<''와이로''>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용어입니다. 청탁(請託)이나 뇌물(賂物)을
일컫는 용어(用語)입니다.
옛날 13세기 고려시대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하루는 혼자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습니다.
요행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어가게 해 달라고
집 주인께 청했지만,
집주인(李奎報 /이규보)은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고 말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밤 묵어가기를 거절 당한 그 집(이규보의집) 대문에 붙어 있는
한 줄의 글이 임금을 무척이나 궁금하게 했습니다:
"唯我無蛙 人生之恨''
(유아무와 인생지한)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 한(恨)이로다"
''저 글속에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개구리가 없다고
인생의 한(恨)품고 살아가는
내면(內面)의 진실이 무엇일까
임금은 궁금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의미를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감(感)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주막(酒幕)에서 임금은 국밥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면서 주모(酒母)에게
이규보의 집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주모의 대답인즉선
그집 주인(이규보)은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난 후 부터는
마을에도 잘 안 나타나고,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이규보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정사정한 끝에 이규보 집에서
임금의 신분을 감춘채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습니다.
임금은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임금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이규보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
(유아무와 인생지한)의 의미를
이규보로 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 사연(事緣)을 듣을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한동네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와서 하는 말이
누가 노래를 잘 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답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약속이였습니다.
그런데 백로(白鷺)를 심판으로 하고 노래시합을 하자고 까마귀가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까마귀의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꾀꼬리는 흔쾌히 시합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다듬고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하지 않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까마귀는 백로한테 뇌물로 갔다주고 노래시합의
뒤를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꾀꼬리.
약속한 3일이 지나서 노래 시합날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判定)을 기다렸습니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게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몇일 지난 후에서야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서 까마귀가 백로에게 뇌물로 상납하였고, 까마귀가 뒤를 잘 봐 달라고 힘을 쓰서 본인이 패배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落膽)하고
실의(失意)에 빠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규보는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로다"라는 글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규보 선생이
자기 집에 묵은 지나가는 길손에게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뇌물(賂物)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科擧及第)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그 호소문(呼訴文)을 대문짝에
붙여 놓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즉 고려시대13세기 문학사에 한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규보 선생에 의해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와(蛙): 개구리 와.
*이(利): 이로울 이.
*로(鷺): 백 로 로.
*이규보 선생 자신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 떨어지는 실력인데도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科擧)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개구리가 없어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규보(李奎報)로 부터
사연을 들은 임금은 자기 자신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 과거가 있다 해서 지금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였고, 그 후에 임금은 궁궐에 들어와서 긴급히
임시 과거(科擧)를 열 것을 전국에 명(命)하였다고 합니다.
과거(科擧)를 보는 날 이규보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험관이 내걸은 시제(詩題)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
여덟 글자였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이규보는 자기집에
하루 묵은 분이 누구였는지 알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이규보늘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정중하게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나서
답을 적어냄으로써 장원급제하여
차후 유명한 고려시대 학자가 되었고
고려의 문신(文臣)이요 또 문인으로
여생(73세)을 보내게 됨으로
그 이후 이규보/李奎報 라는 이름이
현세에 이르기 까지 잊혀지지 않고
창대(昌大)하게 빛나고 있다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카 톡 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