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지] 지도가 구겨져도 길은 이어집니다
부산에서 여고생 3명이 꽃다운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한 장의 지도를 품고 살아갑니다. 내일의 일정부터 10년 후의 비전까지, 우리는 꼼꼼하게 선을 긋고 목적지를 표시하며 자신만의 길을 계획합니다. 그 계획이 순조롭게 펼쳐질 때 우리는 안도하고,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삶이 흘러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풉니다.
그러나 삶이라는 무대는 종종 우리의 각본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굳게 믿었던 계획이 어긋나고,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깊은 당혹감과 좌절감에 휩싸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에 잠 못 이루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세상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계획의 실패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이유는 ‘통제감의 상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계획은 바로 그 통제감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계획이 좌절되는 것은 단순히 길이 막힌 것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무력감과 불안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린 지도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막막함, 그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절망의 정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관점을 조금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계획의 '결과'는 날씨나 타인의 행동처럼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 집착하면 괴로움만 커질 뿐입니다. 대신,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나의 반응'과 '노력의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내면의 목표를 세우고 실패를 '능력 부족의 증명'이 아닌 '성장을 위한 정보'로 해석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계획의 실패는 소중한 것을 잃은 것과 같은 '상실'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부도, 끝도 아닙니다. 실망감,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들은 부적응 행동으로 표출시키지 않는다면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칼 융은 “감정은 삶의 손님이다. 내쫓을 것이 아니라 초대해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감정들은 말을 걸어 옵니다. 그 때 그것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재조정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고통은 다듬어지면 예술이 되고, 응축되면 에너지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실패를 통해 오는 실망, 분노, 슬픔은 무의미한 고통이 아닙니다. 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의 메시지를 해석하며, 창조적으로 전환해 나갈 때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진 자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계획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더 좋은 길로 우리를 안내하기 위한 ‘지혜로운 초대장’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린 지도는 나의 유한한 경험과 시야 속에서 그려진 최선일 뿐, 더 넓은 세상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지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획했던 A라는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B라는 낯선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 길은 처음에는 두렵고 불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재능과 강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계획의 실패는 우리를 더 단단하게 연단하고, 시야를 넓히며, 겸손을 배우게 하는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근육이 상처 입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더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계획의 좌절이라는 상처를 통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쓴 삶의 초고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이 더 나은 문장과 이야기로 수정하고 편집하고 계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까? 나의 계획은 훌륭한 초고였지만, 그분의 편집을 거쳐 비로소 위대한 작품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삶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중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걸음이 계획과 달라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기억하십시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인도받고 있음을. 그 길의 끝에서 분명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계획보다 더 완벽한 계획이 존재했음을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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