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한일정상회담이 '성공적인' 이유 네 가지
- 이범찬 중원대 교수·前 국정원 차장보
국가는 어떻게 망하는가? 동서고금의 문명을 분석해 보면 모든 국가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에 스스로 붕괴됐다. 그것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내부의 권력 다툼이든 체제의 구조적 부패와 무능이든 간에 한 나라가 망할 때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 붕괴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가 자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인은 이기주의와 대중인기 영합이다. 국민이 작은 이익만 추종하고, 지배 엘리트가 대중과 영합할 때 국가는 쇠망의 길로 가게 된다. 대제국 로마가 그랬고 조선도 그랬다. 조선은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로 내부적으로 거의 다 붕괴되어 있었다. 일본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고종한테 거액의 은사금을 주고 매수·합병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포퓰리즘과 거짓·선동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강제징용 문제를 제3자 대위변제로 풀고, 정상회담을 통해 난마같이 얽힌 한일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런데도 ‘삼전도의 굴욕’, ‘매국행위’ 등으로 폄훼하면서 국민을 거짓으로 선동해 분열시키고 있다. 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혼밥’하고, 수행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한테 두들겨 맞았을 때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민의 반일정서를 부추겨 일시적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국익을 해치고 정치적 자해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유대한민국의 미래가 자살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16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무엇을 남겼는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전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망쳐놓은 한일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DJ 이후 20년간 깨져 있던 정상간 신뢰와 진정성을 완전히 회복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죽창가를 외치면서 박근혜 정부가 어렵사리 해놓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해 양국 안보협력 환경을 악화시켰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후 최악의 한일관계를 만들었다. 윤 정부는 전 정부와 개념 없는 판사가 저질러 놓은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해결했고, 수출규제 해제 및 셔틀외교 복원 등 그간에 맺힌 경제와 안보의 매듭을 다 풀었다. 특히 기시다 총리가 두 번이나 개인적 신뢰관계를 언급함으로써 향후 현안을 푸는 좋은 토대를 만들었다.
둘째, 이번 정상회담은 국가 이익을 확실히 담보한 회담이었다. 국익은 ①국가안보(security)를 튼튼히 해 생존하고, ②국가의 힘(power)을 기르고, ③돈을 많이 벌어 번영(prosperity)하고, ④국가의 위신(prestige)을 지키는 것이라고 국제정치학에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국익은 안보→힘→번영→위신의 순으로 중요하다. 후순위가 앞설 수 없다. 그런데 한일 정상회담을 폄훼하는 세력은, 한일관계 개선으로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음에도, 국민의 자존심에 모욕을 줬다면서 국민 감정선을 자극하는 선동을 하고 있다. 위신(prestige)이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안보(security)라는 가치를 능가할 수 없다. 어불성설이다.
셋째, 신냉전 국제질서에 대해 적극 대응해 동북아의 새 틀을 열려는 회담이었다. 지금 세계는 자유·민주주의 대 독재·권위주의 체제의 대결로, 동북아는 북중러 대 한미일로 남북방 삼각관계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한일관계가 조속히 개선되어 한미일이 함께 북중러에 대응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한일관계가 나빠져 한미일이 결속할 수 없기를 바라면서 이를 적극 방해하고 있다. 북한은 ‘갓끈 이론’으로 한국의 안보가 미국과 일본이라는 2개의 갓끈으로 탄탄히 묶여있다고 보고, 이를 허물기 위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려 갖은 노력을 다한다. 북한은 민노총 등 국내 반체제 세력한테 반일감정을 고조시켜 한일관계 파국을 조장하라는 지령을 여러 차례 내리기도 했다. 북한은 2017년 7월 "일장기 화형식, 일본인 퇴출운동, 대사관 및 영사관에 대한 기습시위 등을 비롯해 파격적인 반일투쟁도 적극적으로 벌여, 일본 것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2021년 5월에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문제를 걸고 반일 민심을 부추겨 일본 것들을 극도로 자극하는 한편, 집권세력을 압박해 이남 당국과 일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도록 조치하라"며 반일 관련 이슈를 제기하라는 지시를 지속적으로 하달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돼 파탄나기를 선동하는 세력은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세력이나 다름없다. 내년 총선에서 표를 겨냥해 한일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세력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반(反)대한민국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북핵이라는 최대의 안보위협을 풀고, 향후 지향해 가야 할 국가안보의 방향을 제시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관계를 탄탄히 할 수 있게 됨으로써 4월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핵공유협정 체결 등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미국이 국제문제에 대해 영향력 행사가 약화되었을 때 한국이 사는 방법은 ①중국 밑으로 들어가 속국이 되거나, ②독자적 핵무장을 하거나, ③일본과 안보협력 강화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 경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 유사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유엔 후방기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국제정치는 정글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다. 미국은 공산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2차대전 때 적이었던 일본·독일과 한편이 됐다. 우리도 일본과의 과거 아픈 역사를 기억은 하되 내세우지 말고, 안보·경제 등 국익을 위해 한미일이 함께 발을 묶고 미래로 전진해 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한일관계 조기 정상화는 필요하다.
출처 : 자유일보(https://www.jay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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