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망명지’ 낯선 호텔서 나 홀로 ‘코로나19’와 싸우다]
터키에서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필자는 지난 10월 14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에 걸린 사실을 확인한 곳은 터키 이스파르타(isparta).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내륙에 자리 잡은, 로마제국 때부터 장미향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코로나19 음성 판정 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거짓말처럼 양성 판정을 받았다.
- 호텔 방에서 10일간 격리생활
필자가 머물던 호텔 관계자가 양성임을 알려왔을 때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호텔 매니저가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 1시간 뒤 로비로 내려갔다. 그러자 필자 눈앞에 호텔로 급속 배달된 코로나19 판정서가 펼쳐졌다. 종이에 ‘포지티브(Positive)’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터키인과의 접촉이 없었다. 말도 안 통하는 현지인과 얘기를 나눌 만한 필연적인 상황도 전무했다. 평소 취미인 고대 유적지나 역사 무대를 찾는 것이 터키에서의 일상이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와 달리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곳이 터키의 고대 유적지다. 유일하게 마주치는 것은 방목 중인 소, 양, 염소와 목동뿐이다. 음식도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먹었고, 자동차도 장기 렌털했기 때문에 사람과 얼굴을 맞댈 이유가 별로 없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다.
터키의 코로나19 검진소는 휑한 벌판에 의자 하나 두고 검사를 실시하는 원시적인 시설이다. 오진했거나 다른 사람으로 오인했을 것이라 믿고 호텔 매니저에게 재검진을 요청했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확진된 이상 곧바로 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고맙게도 호텔과 병원 어디를 격리장소로 원하는지 물어왔다. 물론 호텔이다. 병원에 가면 일단 언어 문제도 있고, 음식 문제와 더불어 다른 환자와의 접촉도 필연적이다. 호텔 매니저는 필자를 위한 격리용 방 하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호텔 측은 필자의 방이 있던 6층의 다른 방 20개를 전부 비웠다. 10월 14일부터 얼떨결에 호텔방에서의 새로운 ‘팬데믹 망명’이 시작됐다.
- 이탈리아행을 위한 음성 증명서가 화근
격리기간은 10일이었다. 14일간 하는 나라도 있지만 터키와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10일로 규정하고 있다. 음식, 휴지, 타월 등의 필수품은 전화를 하면 방문 앞에 두고 갔다. 터키의 보건소에서 약 하나를 보내왔다. 내용을 보니 영양제다. 보건소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필자가 무증상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열이나 기침이 전혀 없다. 격리 첫날 체온은 36.5도였다. 호텔 방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4·7·8호흡을 했다. 4초 정도 코로 숨을 들이마쉰 뒤, 7초 정도 중단했다가, 8초 동안 내쉬는 호흡법이다. 산소도 공급하지만, 폐의 탄력성을 길러주는 호흡법이라고 한다. 평소 수영장과 헬스클럽에서 몸을 단련했지만 방 안에 있는 동안은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순식간에 격리생활 10일이 후다닥 지나갔다. ‘진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의 몸 상태 그대로여서 양성 판정이 엉터리란 생각만 들었다.
더불어 전염된 장소를 추정해 봤지만 어디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몇 날 며칠 1분1초를 되돌리며 곰곰이 되새긴 결과, 어렴풋이 답이 나왔다. 음성 판정 증명서를 받기 위해 돌아다녔던 병원 어디선가 걸린 것 같다. 검진소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문의하며 무려 3일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전염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코로나19 추적 앱 운영하는 터키
격리 10일이 지난 뒤 이스파르타 의 호텔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별 탈 없이 10일이 지났다고 하지만 양성이란 낙인이 있는 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다. 호텔 종업원들이 필자를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담을 주지 않고, 필자 역시 자유롭게 지내자는 생각에서 북쪽의 고도(古都) 아피온(Afyon)으로 옮겼다. 몸 관리를 할 수 있는 자연온천이 있는 호텔로 정했다. 터키는 코로나19 추적 앱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은 무조건 등록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추적이 가능하고, 호텔이나 공공교통을 이용할 경우 추적 앱의 고유번호를 알려줘야만 한다. 필자는 격리기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미 건강 상태가 정상으로 분류돼 있었다.
- 13일째 몸을 공격해온 바이러스
몸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아피온의 호텔로 옮긴 지 3일 뒤, 즉 양성 판정 후 13일째부터였다. 가까운 고대 유적지에서 돌아온 직후인 오후 6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가벼운 어깨 근육통도 시작됐다.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몸도 데웠지만, 점점 추위가 뼛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감기 때 느끼는 한기와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체온은 36.5도 그대로다. 기침도 없고 그냥 한기와 어깨 근육통만 느껴지는 상태다. ‘10일 격리기간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13일이나 지난 지금은 아니겠지?’란 생각이 들었다. 한기와 근육통 속에서 어렵게 잠을 청했다.
- 폐 속이 꽉 막히는 괴로움
눈을 뜬 것은 새벽 2시쯤이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깬 것이다. 폐 속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는, 100m를 달린 뒤에나 나타날 거친 호흡이 계속됐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난생처음 죽음이 어떤 형상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전부 무너지거나 한꺼번에 불타는 식이 아니라 작은 연결고리가 어긋나면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벽에 부딪치는 듯한 느낌이다. 뇌·심장·신장·근육을 비롯한 신체 전부가 튼튼한데도 숨쉬기 하나가 어려워 질식 사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황당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이 갑자기 한순간에 몰려왔다는 점이다. 낮에는 약간의 한기만 들었지만 밤이 되면서 한순간 몸 전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혼자 여행하는 동안 일어날지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일찍부터’ 코로나 준비를 해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3개의 비상 준비물이다. 첫째 스테로이드제다. 인터넷을 뒤지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공표한 의학 지식을 나름대로 수집한 결과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이 코로나19에 나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코로나19 증상 완화를 위해 2주간 복용한 덱사메타손.
덱사메타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치료에 쓴 약이다. 필자가 양성 판정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인 10월 15일, WHO(세계보건기구)는 덱사메타손이 코로나19에 듣는 유일한 약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처방 결과를 알아낸 뒤 곧바로 터키 현지 약국을 찾아갔다. 고맙게도 터키에서는 덱사메타손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었다. 필자가 양성 판정을 받기 정확히 1주일 전, 6㎎짜리 2통을 구입했다.
- 사이토카인 폭풍을 막을 아스피린
두 번째로 준비한 것은 아스피린이다. 이미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지만, 아스피린이 코로나19 환자들의 혈액응고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한 결과이다. 한 알에 100원 정도 하는 진통제 아스피린이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코로나19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에 있다.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한 인체 내 면역체계의 과도한 반응이다.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면서 펼쳐지는 대규모 염증 반응이 코로나19의 치명타이다. 사이토카인 폭풍을 통해 면역계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고, 혈액응고 작용을 담당하는 혈소판 또한 과활성화할 수 있다. 혈액응고는 산소공급 차단을 의미한다. 멀쩡하다가도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혈액응고가 일어나면서 심장이 멎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코로나19에 걸려 숨진 김기덕 감독이 그 같은 경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피린은 혈액응고의 원인이 되는 혈소판 과활성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복용해야만 하는 것이 아스피린이다.
셋째는 ‘옥시미터(Oximeter)’란 전자기기다. 적외선 파장을 이용해 혈중 산소포화도(Blood Oxygen Saturation)를 측정하는 기기로, 폐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보통 수치가 95~99로 나타날 경우 정상이며 그 이하는 비정상이다.
- 폐 속의 산소포화도 검사해보니
양성 판정 13일째의 심야로 돌아가 보자. 가파른 호흡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옥시미터로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중국산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수차례 측정한 결과 대략 93 정도란 것을 알게 됐다. 일단 비정상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내려가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꿈속의 얘기 같지만, 불과 하룻밤 만에 폐 전체에 바이러스가 밀려든 셈이다. 추측건대 무려 13일이나 몸속에서 싸우다가 마침내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폐를 무대로 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여겨졌다.
코로나19의 특징이라는 후각 상실 여부도 확인해봤다. 평소 갖고 다니던 10여종류의 향수 냄새를 전부 맡아봤다. 무슨 향인지는 알겠지만, 후각의 민감도가 ‘확실히’ 떨어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누가 봐도 인정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증상이다.
- 덱사메타손 2주간 복용
필자에게는 유일한 처방만 남았다. 가능하면 복용을 피해야만 한다는 덱사메타손이다. 병원에 가고, 처방을 받고 할 틈이 없다.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사 친구와 상의해 어느 정도 양을 복용할지는 파악해뒀다.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6㎎ 복용이 기준이다.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적이 없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우선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무모하게, 그것도 의사 허락 없이 멋대로 독한 약을 복용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이다.
2차 격리에 들어가면서 호텔 종업원에게 부탁해 구입한 금붕어 어항.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금붕어 두 마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친구가 될 것이라는 심정이었다.
- 눈가의 타는 듯한 통증과 설사
밤새 고통에 시달린 다음 날, 병원으로 갈지 여부를 고민했다. 일단 법적으로는 정상인이지만 실제는 감염자다. 호텔 매니저와 전화로 상의를 했다. 가능하면 호텔에서 격리생활을 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놀랍게도 호텔 내에는 이미 필자와 비슷한 상황의 터키인이 두 명 더 있었다. 매니저의 도움으로 따로 떨어진 방에서 다시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방을 배정받은 즉시 호텔 직원에게 ‘특별한’ 부탁 하나를 했다. “생명체를 하나 넣어달라”고 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격리된 방에 있는 동안 함께할 생명체다. 100달러를 주면서 시장에 가서 눈에 띄는 대로 알아서 사갖고 와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2시간 뒤 호텔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 앞에 갖다놨다는 것이다. 문을 열자 작은 어항과 금붕어 두 마리가 보였다. 남은 돈 95달러도 함께 문 앞에 놓여 있었다. 가슴속으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바이러스의 폐 공격은 양성 판정 14일째인 밤에도 이어졌다. 덱사메타손 덕분인지 첫날 고통에 비해 약한 공격이었다. 한기도 덜해졌지만 반대로 눈 주변이 타들어가면서 불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잇몸이 시리면서 음식을 씹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15일째부터는 설사가 시작됐다.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복통이 시작되면서 거의 탈진 상태가 됐다. 약하지만 두통도 시작됐다. 목소리도 노인처럼 쉰 소리로 변해갔다. 그러나 덱사메타손을 먹으면 대략 1시간 이내에 상태가 급속히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6일째부터는 근육통도 완전히 사라졌다. 17일째부터는 비정상적인 증상이 전부 사라졌다. 의사 친구의 자문에 따라 2주간은 계속 복용하기로 했다. 양성 판정 이후 27일째 되던 날이 덱사메타손 마지막 복용일이었다. 스테로이드제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검어졌다. 간에 부담을 주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걱정을 했지만 양성 판정 후 35일째로 접어들던 때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감염이란 청천벽력을 체험한 지 세 달째로 접어들었다. 가벼운 감기 걸리듯 스쳐지나갔다고 볼 수도 있지만 후유증은 남아 있다. 먼저 불면이다. 필자는 불면에 시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양성 판정 후에는 자다가 거의 1시간마다 깬다. 총수면시간도 종전의 7~8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왼쪽 폐의 고통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아직 X선 촬영은 안 해봤지만 뭔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분명하다. 종전에 비해 폐 기능이 떨어진 듯하다.
- 코로나19가 남긴 후유증
코로나19 감염 사실은 가족은 물론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 예외적으로 한국의 친구 몇 명에게 전하자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내 주변에서 처음 만난 감염자.” “항체가 생겼겠네.” 그러나 12월 들어 한국 내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거꾸로 필자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크게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코로나19에 절대 안 걸린다’는 생각보다 걸렸을 경우에 대비하라는 것이 총론으로서의 첫 번째 조언이다.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가 나온다. 병상이나 음압기 여부만이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의 지속적인 투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필자의 경우지만 불과 하루 만에 바이러스가 폐로 밀려온다. 걸릴 경우 어떻게 행동할지 예비훈련을 미리 시행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조언은 미리 스스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치료약과 의료기기, 심지어 격리시설도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시골 집이나 여관, 호텔 같은 곳이다. 정부의 도움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부가 내 목숨까지 돌봐줄 것이란 환상은 일찍부터 깨는 것이 좋다.
백신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많을 듯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백신 접종이 내년을 넘겨 2022년에나 가능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는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식 사고방식의 정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다. 장기전이 필요하고 장기전이 당연하다. 아무도 원치 않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할 시간이다. 2021년은 바이러스 감염을 염두에 둔, 각자도생의 해로 기록될 듯하다.
[주간조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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