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웃다
( 獨 笑 )
Laugh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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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살림이 넉넉하여 양식(糧食) 많은 집엔 자식(子息)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자식(子息)이 많은 집엔 가난하여 굶주림이 있다
達官必憃愚 (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人才)는 재주 피울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집안에 완전한 복(福)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능지):
지극한 도(道)는 항상 쇠퇴(衰退)하기 마련이다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부모(父母)가 절약(節約)하여 재산(財産)을 모으면 자식(子息)들은 방탕(放蕩)하고
婦慧郎必癡 (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智慧)로우면
남편은 바보짓을 한다.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는 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 댄다.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世上)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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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1762-1836)
나 홀로 웃는 까닭을 누가 알아줄까!
위의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홀로 웃다
(獨笑)”
한시(漢詩)를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주어서 올립니다.
위의 한시(漢詩) 내용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이
시(詩)내용 그대로다.
12줄의 내용이 보편적인
우리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석학(碩學)과 견주어도
上席에 모실 분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自尊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 “홀로 웃다(獨笑)” 처럼 허탈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人間事)다.
18세기 초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正祖)와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하늘은 조선이 행복(幸福)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正祖)를 하늘로 불러올렸다.
따라서 이제 막 날개를 달아 일생의 포부를 조선의 개혁에 펼치려던 정약용(1762-1836) 선생의 날개도 꺾여 전남 강진으로 18년 유배(流配)를 간다.
개인적인 역사관(歷史觀)이지만
오늘날 허리가 잘린
반신불수(半身不隨)의 한반도의 불행은
*개혁의 기치를 내건 인조의 세자 소현세자
(昭顯世子)(1612년~1645년)의 죽음과
*정조(1752~1800)의 일찍 죽음
*고종의 무능(無能)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실패로 개혁 개방의 기회를 놓쳐 열강(列强)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남북분단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론분열(國論分裂)”이다.
일본의 명치유신
(明治維新)은
명치왕(明治王) 때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막번체제(幕藩體制)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
(王政復古)를 이룩한 국가변혁이다.
결국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양보를 하고 명치유신
(明治維新)이 성공하여
오늘날 일본은 세계 강대국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이
1868년부터 1880년대에 마무리 되었으니까
정조(正祖) (1752~1800),
다산(1762~1836)의 생(生)이 끝날 때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비슷한 시기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시작하는 때에 조선은 안동김씨 대원군 민비(閔妃)등의 권력다툼으로
패망(敗亡)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산(1762~1836) 선생이 강진 유배 중에 쓴 책이 1000여권,
그중에서 “경세유표(經世遺表)”라는 책은 참고자료에서 기존 제도들의 모순에 대한 뼈아픈 통찰과 지적을 남기며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도록 정치, 사회, 경제 제도를 개혁하는 부국강병을 이루는 데 목표를 두자는 내용의 국정개혁의 중요한 책이다.
일본은 선진국의 깃발을 달고 대륙을 넘볼 때에
조선은 권력(權力) 다툼으로
다산(1762~1836)을 강진으로 귀양 보내 “앉은뱅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람은 큰 슬픔을 당하면 슬피 운다.
울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을 당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허허 혼자 웃는다.
다산초당(茶山艸堂)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 유적지라 생각하면 안된다.
한 인생의 포부(抱負)를 짓밟힌 한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 을
할 수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廣州)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다산(1762~1836)의 생가 당호(堂號)를
“여유당(與猶堂)” 이라 했다.
다산(1762~1836) 선생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여유당(與猶堂)” 이라 당호를 붙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숨도 크게 안 쉬고” 살았다고 한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유당(與猶堂)” 은 노자(老子) 도덕경의
한 구절로
마치 코끼리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조심 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위인(偉人)이 갔다.
아직도 당파의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허허허---
언제나 정신 차리려나 !
犬糞食衛 (견분식위 : 개똥이나 쳐먹어라) 이나 먹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제발 더 이상 국민 팔지 말라. 썩은 정치인, 모든 저급 방송국, 언론사, 방송인, 언론인 이땅에서 하루 속히 사라져야 할 것들이다.
오늘 허! 허! 허! 웃는다.
ㅇㅁㅅ...ㅇ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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