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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 비판

거짓 없는 진실 2026. 9. 29. 19:16

추석 극장가에 걸린다는 영화 암살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나는 꽤나 거창하고 긴 칼럼의 초고를 쓰고 있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 헤게모니 이론을 빌려오고, 괴물이나 웰컴 투 동막골, 택시운전사 같은 좌파 진영의 징글징글한 스크린 프로파간다 공식을 조목조목 해부하는 글이었다. 

영화관을 이념의 세탁소로 전락시킨 그들의 치밀한 진지전을 차갑게 경고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품고 있는 끔찍한 음모론의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 

나는 모니터에 적어두었던 그 기나긴 글을 미련 없이 모두 지워버렸다. 

이런 영화를 비판한답시고 그람시의 철학이나 문화 권력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조차 

그 학문적 담론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이념 대립이나 정치 공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와 도리에 관한 지극히 평범한 상식의 문제다.

아무리 돈벌이가 좋고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다 한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핏줄인 아들과 딸들이 버젓이 두 눈을 뜨고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데 그 자식들 보란 듯이 전국 극장 스크린에 가짜 뉴스를 띄워놓고, 

사실 너희 아버지가 너희 어머니를 죽인 것이라는 끔찍한 패륜적 음모론을 대중의 오락거리로 던져주는 것이 과연 제정신 박힌 인간들이 할 짓인가.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과거의 지도자를 악마화하여 상업적으로 소비하고 싶다 해도, 

인간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금도라는 것이 있다. 

아내가 총탄에 쓰러지던 날, 그리고 홀로 남겨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얼마나 처절하게 괴로워하고 비통해했는지는 굳이 측근들의 입을 빌릴 필요조차 없다. 

평생의 정치적 앙숙이자 서슬 퍼런 정적이던 김영삼마저 

자신의 회고를 통해 그 깊은 슬픔과 인간적 고뇌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기록해 두었을 정도다.

가장 지독한 정적조차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남편의 피 끓는 비애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삼류 영화꾼들이 패륜적 음모론으로 난도질하고 있다. 

얄팍한 낭설들을 주워 모아 팩션이라는 편리한 방패막이 뒤에 숨은 채, 

살아있는 유족의 피눈물을 입장권 돈다발로 환전하려는 이 악랄한 상술 앞에서 나는 분노를 넘어 깊은 환멸을 느낀다.

문득 과거의 일 하나가 떠오른다. 한때 시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그의 성격상 PC에 대충 유서를 작성할 사람이 아니다, 혹시 문재인 측이 개입해 죽인 것 아니냐는 섬뜩한 음모론이 돌았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확인되지 않은 끔찍한 낭설로 고인의 비극을 모욕하고 떠벌리지 말라며 오히려 앞장서서 주변을 만류했었다. 그것이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상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족의 가슴에 칼을 꽂는 작금의 저 짐승 같은 영화 기획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시절 알량한 도덕심으로 그들의 비극을 방어해 주려 애썼던 내 자신이 그토록 뼈저리게 후회될 수가 없다. 

자신들의 진영에 던져진 음모론 앞에서는 고인 모독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발작하던 자들이, 

상대 진영의 비극 앞에서는 최소한의 인륜조차 내다 버린 채 카메라를 들이대고 낄낄대며 돈벌이에 나선다. 

이 지독한 내로남불의 괴물들에게 상식과 염치를 기대했던 내가 순진한 바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 영화로 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 역시 민주 국가의 신성한 권리다. 

그러나 그 자유와 돈벌이가 누군가의 가족을 짓밟고 인륜의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무기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도 문화도 아닌 그저 야만적인 스크린 부관참시일 뿐이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된 타락한 예술의 본질을 이렇게 조롱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핑계는, 결국 변태를 위한 변태라는 말의 고상한 포장지에 불과하다.

역사적 진실을 탐구한다는 거룩한 핑계나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포장지로 아무리 덧칠해 본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저 영화는 결코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그저 타인의 비극을 씹어 돌리며 잔혹한 도파민을 팔아먹는 천박하고 가학적인 폭력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다 버린 이런 괴물 같은 기획이 버젓이 영화의 이름으로 극장에 걸리고 소비되는 나라라면, 우리는 지금 몹시도 서글픈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비록 허구를 덧입힌 팩션이라 할지라도, 행여나 지나간 역사의 무게를 훼손할까 두려워 1년 넘게 먼지 쌓인 실록을 펼쳐놓고 팩트와 치열하게 대조해가며 고통스럽게 역사소설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문득 무척이나 미련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저들은 저토록 가볍고 뻔뻔하게 패륜적인 거짓말을 지어내어 예술이라 포장하고 스크린에 올려 돈을 벌어들이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겠다고 밤잠을 설쳐가며 이 고단한 활자의 진흙탕을 뒹굴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피눈물을 팔아넘기는 야만의 상술 앞에서, 

팩트의 무거움과 인간에 대한 염치를 지키려 애쓰는 정직한 작가의 허탈함만 짙어질 뿐이다.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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