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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모두 같은 달에 피지 않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6. 9. 18. 10:03

[열린편지] 꽃은 모두 같은 달에 피지 않습니다

시인 몰리 피콕은 메리 딜레이니의 생애를 다룬 《The Paper Garden(종이 정원)》에서 한 여인의 늦은 시작을 보여 줍니다. 1772년,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지 몇 해가 지난 딜레이니는 일흔두 살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붉은 종이 조각의 빛깔이 제라늄 꽃잎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가위를 들어 종이를 오리고 검은 바탕 위에 붙였습니다. 꽃잎과 수술, 줄기와 잎맥까지 종이로 옮겼습니다.
한 송이에서 시작된 일은 열한 해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1783년 시력이 약해져 가위를 놓을 때까지 그가 만든 ‘종이 모자이크’는 985점에 이르렀고, 작품들은 ‘딜레이니의 식물들’이라는 뜻의 《Flora Delanica》라는 열 권의 화첩으로 남았습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일흔두 살에 갑자기 예술가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딜레이니는 그전부터 자수를 놓고 그림을 그렸으며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일흔두 살에 갑자기 생긴 것은 재능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익혀 온 눈과 손이 마침내 자기에게 맞는 형식을 만난 것입니다. 작품은 늦게 시작되었지만 작품을 가능하게 한 시간까지 늦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원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도 목련과 장미와 국화는 서로 다른 때에 핍니다. 국화가 목련보다 늦게 핀다고 누구도 그것을 지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정원에서 개화표는 서열표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자꾸 서열표를 들이댑니다. 몇 살에는 공부를 마치고, 어느 때에는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사회가 삶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쯤에는 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연령 규범을 ‘사회적 시계’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시계는 시간을 가늠하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한 사람의 가능성까지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평균은 많은 사람의 경향을 보여 줄 뿐 한 사람의 운명을 예언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균을 기준으로 만들고, 기준을 다시 판결로 바꿉니다. 남보다 늦으면 아직 오지 않은 자기 가능성까지 실패라고 부릅니다.

인지심리학자 조슈아 하트숀과 로라 저민은 4만 8천여 명의 온라인 참가자 자료와 기존 지능·기억 검사 자료를 함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인지능력은 모두 같은 나이에 정점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점을 보이는 능력이 있는가 하면, 어떤 능력은 40대 이후에 높은 수준에 이르고 어휘처럼 더 늦게까지 향상되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이 연구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더 뛰어나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늦게 성공한다고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인생에는 실제로 지나가 버리는 기회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한 사람의 모든 가능성을 하나의 나이로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늦었다는 체념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가능성이 끝났다는 판결로 바꿀 때 시작됩니다. 세월이 저절로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고, 실패하고, 다시 손을 움직인 시간은 이전에는 없던 눈과 손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딜레이니에게 정원과 자수와 그림의 시간이 그랬습니다. 어떤 세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준비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갈렙은 마흔 살에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곧바로 얻지 못했습니다. 사십오 년이 지나 그는 여든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산지에는 여전히 아낙 사람이 있었고 성읍들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갈렙은 자신의 나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이어진 말은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그는 사십오 년을 세면서 약속도 함께 세고 있었던 것입니다. 갈렙이 구한 것은 잃어버린 젊음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산지였습니다. 믿음은 세월을 거꾸로 돌리는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오늘에 응답하는 힘입니다. 늦었다는 체념이 만드는 가장 큰 착각은 남의 개화 시기를 자기 인생의 마감일로 삼는 것입니다. 봄에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을꽃을 뽑아 버리는 정원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자기 인생에 그렇게 합니다. 모세는 80세에 본격적인 사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꽃은 모두 같은 달에 피지 않습니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말과 이제 피지 못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꽃은 피는 순서로 값을 매기지 않습니다. 늦은 꽃에는 늦은 이유가 있습니다.
1772년 어느 날, 일흔두 살의 한 여인이 붉은 종이 조각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날 꽃은 검은 종이 위에서 처음 피었지만, 그 꽃을 알아보는 눈은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92:13–14)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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