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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을 보고나서

거짓 없는 진실 2024. 2. 18. 21:43

건국전쟁을 보고나서

최근 개봉된 건국전쟁에 대한 소견이 계속되는 가운데 필자가 첨가하는 사유는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  및 역사적 사실에 벗어나 오해와 왜곡이 갖는 의미이다. 4.19  이후 이승만대통령과 자유당 정부는 철저히 거부된 대상이다. 심지어  친일내각에서 6.25를 막지 못하고 서울점령에 도피한 비겁자에 이르기까지 가히 건국자가 아니라 저급한 인물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각종 자료는 건국대통령은 천재적 외교적 수완으로 한반도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였고 정부수립이후엔 토지개혁과 미국과의 안보체제를 추구한 지도자였고, 전쟁에서는 노구에도 전선을 누벼 한국의 클레망소에 비견되었다. 전쟁초기 절체절명의 순간  해외망명을 권고하는 미국대사에게 권총으로 자결을 선언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은 지도자(대통령) 이전에  이미 국제사회의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한학과 영어에 통달하고 불과 5년만에 세계최고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었다. 이미 그가 조국을 떠나기전 20세기초 쓴 독립정신은 옥중수고에 비견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대한 위대한 각성이었고, 중일전쟁 당시 저술한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는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예언서였다. 가히 한반도인을 넘어선 20세기 지도자의 지성을 보여주었었다.

문제는 독일이나 일본같은 지성이 결여된 한국은 이승만연구나 건국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없었다. 심지어 탈냉전후 러시아가 제공한 해방정국 당시의 러시아측 자료에 대해 번역조차 수년을 허비하기에 이른다. 오직하면 러시아인으로 해방당시 김일성(북한)연구로  유명해진 안드레아  란코프는 김일성정권은 국가마저 소련이 만들어주고, 소련군 대위였던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변신하는데 소련장군 스티코프의 결정이었다고 반증했다. 김일성은 결코 이대통령같은 항일전선의 주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한국역사에서  이승만대통령 죽이기는 역대정부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군사정부의 조국근대화는 이승만대통령의 업적 즉, 한미동맹과 교육(유학생)제도 위에 가능했다. 1961년 군사정부는  남북격차를 인식하고 산업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위해  화폐개혁, 산업화전략 등 여러조치가 실패하자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참전으로 대반전의 기회를 잡게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박정희대통령은 이병철(1910), 정주영(1914), 최형섭(1919), 신격호(1921), 박태준(1927) 등 위대한 세대의 동참이 있었다. 이들은 일제와 두번에 걸친 전쟁(태평양전쟁, 6.25)을 겪은 오천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였다. 이들에게 인생은 곧 고해였고 전쟁이었다. 유럽제국경제사를 쓴  위대한 경제학자 거센크론이 결론지은 "미미한 도전에는 미약한 응전, 거대한 도전에는 위대한 응전"의 세기적 사례였던 것이다. 

반면 구한말 태어나 홀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이승만대통령은 외로운 늑대였던 것이다. 유학중 이미 나라는 식민지가 되자 장래가 보장된 대학교수가 아니라 교민사회에서 항일운동을 선택하여 교육자, 종교인, 지도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이 낳은 최고의 지성이자 대통령이된 윌슨  교수에게 배운 지성은 불후의 명저 [일본내막기]를 쓰게 한다. 

태평양전쟁을 예견한 저술로 선각자가된 이승만에게 전쟁후 예견된 독립을 위한 준비는 나라없는 지도자로서  그야말로 최고의 자질을 보여준다. 그의 지성을 알아본 미국의 언론인들은 루스벨트정부의 비밀까지 제공하며 한반도정책을 압박하여 차선, 즉 한반도의 미군상륙과 주둔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미군정하에 조국독립을 위한 외교성과는 유엔승인하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셋째,  이승만대통령의 비전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머무르지 않았다. 빈곤과 문맹, 신분과 남여차별에 전쟁을 선언한다. 전쟁중 한국은 국민교육을 병행하고 [세계철학사전]과 [세계문학전집]을 발행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외교력을 동원한 미국원조의 확보와 군인들과 유학생 제도의 도입은 조국근대화의 토대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원자력 분야 장학생을 파견하고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여 1970년대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은 과학과 산업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게된다. 6.25 중  북진에서 북한의 산업시설을 둘러보는 인사를 미군과 함께 파견하기도 하였고, 용돈을 유학생들에게 주기도 했다. 전쟁복구 당시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군사정부에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대통령과 전두환대통령은 단 한가지 단점, 즉 옥타비아가 자신의 이름을  암살당한 시저(Julius Caesar/카이사르)로 부르게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북한이 하야후 30년 넘게 저주한 이승만의 의미를 몰라, 이순신과 독립기념관만 지켰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와 교양이 결여된 한국 지성의 실체를 보여준다. 만약 독서, 세계사와 교양이 전제되었다면 이순신장군과 함께 이승만동상을 세우고, 독립기념관 대신 건국기념관을 건립했을 것이다.

이순신장군을 민족영웅으로 만든 지도잔 박정희대통령이었다. 조선왕조에 의해 철저히 소외된 민족영웅을 찾았으나 과거(조선왕조)의 인물이었다. 반면 이승만대통령은 책임이 무관한 4.19로 폄하된 건국과 미래를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특히, 5공정부가 주도한 독립기념관은 역사적으로 외세에 의해 독립되었기에 반역사적 상징이다. 결국 현재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된 전두환대통령의 경우는 결국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조작과 선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영화를 시청하면서 후반부 부터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10년전 감히(?) 한국의 현대사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비전으로 영화 각본가로서 감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지도자를 근거없이 공공연히 폄하하는 한국과 한국인은 과연 문화민족이라 할수 있는가?
오히려 경제적 풍요에 대비되는 저열한 교양으로 배은망덕한 개ㆍ돼지 동물농장인가? 분명한 사실은 개ㆍ돼지의 나라를 지성인의 나라로 바꾸는 첫 걸음은 [건국전쟁] 같은 지성물의 공유에 있다는 사실이다. 


2024.2.8
하봉규명예교수(부경대학교, 유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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