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조선(朝鮮)이 망하던 날, 아무도 울지 않았다.

거짓 없는 진실 2026. 9. 23. 12:15

■ 조선(朝鮮)이 망하던 날, 아무도 울지 않았다. ■

1910년 8월 29일, 소위 '경술국치의 날'에 순종 임금은 칙유를 내렸다.
"허약함이 누적되고 피폐가 극도에 달하여 도저히 회복의 가망이 없으므로 일본에 대임(大任)을 맡기고자 하니, 신민들은 공연히 소란을 피우지 말고 이에 따르기 바란다"

나라가 망했으니 도처에서 백성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울고불고 했을까?  아니다. 한일합방 발표 직후 종로거리는 이상스러우리 만치 평온했다.  이것은 외신의 내용이다.  순종 임금이 뭐라고 하는가?  나라가 허약하고 피폐하여 회복불능이라 나라를 일본에게 맡길테니 입을 다물라고 하지 않는가?

3.1독립선언문 발표 당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최린'은 "그날 종로 거리에 조선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흥청거리며 장사하고 먹고 마시는 일상이었다"고 술회했다.

중국의 양계초(梁啓超)는 '조선 멸망의 원인'이라는 논설에서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주변국 사람들은 조선을 위해 비통해 하는데, 조선인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고위 관리들은 출세를 위해 일제에 로비를 하고 새 조정의 벼슬을 얻고자 분주하게 즐겼다"고 썼다.

[일본병탄조선기]에서는 합병 발표를 25일에 하기로 일본은 결정했으나, 대한제국 정부는 순종 즉위 4주년을 기념하는 날에 발표하기를 간청하여 일본이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일본이 무력으로 침탈하여 강점당한 것으로 알려진 이 나라의 왕실은 합병일을 국경일에 버금가는 의미로 날짜까지 맞춰가며 파티를 열어 축하하고 침략의 당사자들과 건배를 나누는 순간을 즐겼다.  '경술국치'니  '강제합병'이니 하는 말로 나라를 잃은 슬픔을 공부했던 우리에겐 생경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양계초의 '조선 망국 원인론'은 뼈아픈 지적이 많다.  그것은 "망국의 원인이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조선 스스로 망했다"는 것이다.  조선 왕실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무능과 타락'은 물론이고 '국민성'도 문제였다.

조선인은 자립하기보다 남에게 의지하는 천성을 가지고 소위 개혁파를 중심으로 일본세력(군대를 포함)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능력있는 나라에 빌붙어 가려는 몹쓸 타성 때문이었다.  궁내의 비빈들은 일본어를 배우기에 시간이 부족했고, 이미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망국에 마치 왕조가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영국 왕립 지리학회 소속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894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을 취재하고 이런 글을 남겼다.
"대다수의 평민이 무거운 조세를 부담하며 양반들은 도조(睹租)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하게 수탈했다.  상인이나 농부에게 돈이 생겼다는 소문이 나면 양반은 있지도 않은 빚을 조장하여 갚으라고 독촉한다.  양반들이 즐겨 쓰는 방법은 돈을 꾸어주었다고 거짓으로 억지를 쓰는 방법이다.  양반들이 평민들의 집이나 전답을 살 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예사였다."

일본에 합병될 때, 열강 중 그 어느 나라도 조선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시지탄으로 여겼다.  구한말 각지에서 폭동이 빈발하자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었던 조선 왕실은 일본 군대를 끌어들여 토벌을 맡긴다.  당시 조선군대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었다.

▶ 당시의 기록을 잠시 보자.
"원래부터 구한국 정치 문란은 극에 달했고 산적들의 무리가 심히 많았다.  그 중 화적(火賊)들은 총기를 휴대하고 집단을 이루어 전국토를 횡행하며 약탈을 자행하였으나 위정자는 이를 소탕하지 못하였다.  군대의 무기는 화적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그저 지방 무뢰한들이 의식(衣食)을 얻기 위해 관군에 투신할 뿐이었으므로, 오히려 병기를 이용하여 재물을 빼앗거나 부녀자를 욕보이는 등 양민들의 고혈을 빠는 해충들이었다.  관군은 거의가 권세가와 악덕 관리들의 수족이 되어 공공연히 중상모략하였으며, 유생(儒生)들은 곡학아세(曲學阿世, 권력에 붙어 따름)로 자기 이익만 좇을 뿐이었다.  조선말기에 전국토는 유린되고 도처에서 분규와 소란이 터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 그런데 '고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고종은 등불을 환희 밝히고 새벽까지 놀다가 새벽 4~7시경이 되면 비로소 잠을 잤고, 오후 3~4시에 일어났다.  고종과 민비는 파티광이었고 허구한 날 새벽까지 파티를 열고 먹고 마시는데 소일했으며 내탕금이 바닥나 이를 채우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매관매직도 모자라 나중에는 백동화 주조권까지 마구 팔아먹는 바람에 조선의 화폐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또 다른 기록을 잠시 보자.  국사편찬위원회가 <고종의 곡연유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고종은 놀기를 좋아하여 집정 이후 날마다 밤이 되면 잔치를 베풀고 음란한 생활을 하였다. 광대와 무당들이 노래를 부르고 거드름을 피웠다. 대궐에는 등불을 대낮처럼 훤히 밝히고 새벽이 되도록 놀다가 4~7시경이 되면 휘장을 치고 어좌에 누워 잠을 자고 오후 3~4시경에 일어났다.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하므로 나이 어린 세자는 습관이 되어 햇살이 창에 비칠 때 잠자는 시간인 줄 알았다.

▶ 망해도 싼 나라!
관리들은 근무기강이 땅에 떨어졌다.  자,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탐관오리들이 기승을 부리고  나라가 이 지경이 되자, 썩어빠진 종묘사직을 구해보겠다고 도처에서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소위 의병이라는 게 생겨난다. 우리는 유생들이 의로운 저항을 했다고 역사에서 배웠다.

그러나 만일 유생들의 소망대로 나라가 망하지 않고 조선이 유지되었다면 대다수의 백성들의 삶은 어떠 했을까?  국제정세는 제국주의를 앞세워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단지 그 상대가 일본이어서 우리는 분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망해도 싼 나라였다.  

▶ 그런데 작금의 우리나라는 어떤가?
누구는 현재의 상황을 임진왜란 직전과 같다고 보는데 무리한 억측이 아닐 것이다.  나는 조선 멸망 때의 혼동이 오늘날 재현된다는 느낌이다. 

▶ 왜 그런가?
정부는 나라빚을 내어 흥청망청 쓰기에 여념없다.  군대는 어떤가?  전쟁이 나면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주변 정세는 우리나라에 결코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고, 동맹인 미국은 우리를 불신한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모든 권력자들이 당위성을 의심받고 있다.  여당은 자기들끼리의 패거리 정치에 안하무인이다.  민심은 이런 집단에서 이미 떠났고 저항 수준의 폭발력이 마그마처럼 쌓이고 있다.  급변하는 정세에 살아남기 위해 뭉쳐도 어려울 판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기업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 바꾸어야 한다!
썩고 무능한 정치권을 물갈이 해야 한다. 암적 존재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대수술이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 지경까지 왔는가?

▶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지금을 즐기는게 옳다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우리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고귀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현 시국을 각성하고 나라를 위해 올바른 길로 떨쳐 나서는 것이 이 시대에 주어진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는가?.
(받은글)

카톡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