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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은 안개를 걷지 못해도 발밑은 밝힙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6. 9. 22. 15:27

[열린편지] 등불은 안개를 걷지 못해도 발밑은 밝힙니다

미국의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루 샌더스라는 노인의 말년을 들려줍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에도 루는 여든여덟 살이 될 때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익숙한 동네를 오가며,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꾸렸습니다. 그러나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기억이 흐려지면서 위험하게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결국 그는 딸 셸리 부부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셸리는 아버지를 지키려고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안전해진 집에서 루의 하루는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텔레비전으로 무엇을 볼지, 친구를 언제 부를지를 더는 혼자 정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아버지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는 뒤로 밀려났습니다.

노후를 생각하면 우리는 먼저 돈과 병원과 살 집을 떠올립니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의 이야기가 보여 주듯, 사람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생활비가 바닥나는 일만이 아닙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줄고, 제 삶을 정할 권리를 잃고, 마침내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 두려움은 안개처럼 옵니다. 모자랄 돈, 닥칠 병, 먼저 떠날 배우자, 자녀에게 짐이 될까 하는 염려가 경계도 없이 한꺼번에 밀려와 오늘의 길까지 지웁니다. 안개 속에서 사람은 먼 곳을 보려고 애쓰다 발밑을 놓칩니다.
안개를 한 번에 걷어 낼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등불 하나는 켤 수 있습니다. 머릿속의 걱정에는 테두리가 없지만, 종이에 옮겨 적은 문제에는 크기와 순서가 생깁니다. 한 달의 필수 지출을 적어 보고, 먹는 약과 병원 연락처를 정리하고, 아플 때 의논할 사람을 정해 두는 일은 앞날을 보장하지는 못해도 오늘 디딜 자리를 보여 줍니다.

그 등불은 사람 곁에서 가장 밝습니다. 1938년에 시작된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는 따뜻하고 안정된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과 깊이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후를 위해 곳간은 채우면서 저녁 식탁은 비워 둔다면 무엇을 준비한 것이겠습니까.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은 남은 시간을 짧게 느낄수록 사람은 넓은 인맥보다 마음을 나누는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고 설명합니다. 연락처의 이름은 줄어도 한 사람과 마주 앉는 시간은 길어질 수 있습니다.

루의 이야기에는 뒷장이 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소규모로 꾸려진 돌봄 공동체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는 언제 씻고 언제 먹을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었지만, 루는 자신에게 아직 세상 속 자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병은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의 발밑에 다시 켜진 작은 선택의 불빛이었습니다.

성경의 바르실래는 여든 살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 그는 왕을 공궤했습니다. 난이 끝나자 다윗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 남은 생을 돌보겠다고 했습니다. 바르실래는 쇠약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음식 맛도, 노래하는 이의 소리도 분별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묘 곁, 자기 성읍으로 돌아가겠다며 김함이 왕을 따르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젊음을 붙들지도, 손을 놓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 남은 등불을 다음 사람의 손에 건넸습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막지 못하는 날은 옵니다. 준비는 필요하지만 준비가 하나님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말씀은 먼 길을 한꺼번에 비추는 탐조등이 아니라 발 앞을 밝히는 등입니다. 그 등을 함께 든 사람들이 믿음의 식구입니다. 노년에는 신앙 공동체가 더욱 소중합니다. 교회는 몸이 건강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만 필요한 곳도 아닙니다. 걸음이 느려지면 기다려 주고, 병원에 갈 때 동행하며,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가족에게 다 말하지 못한 두려움을 함께 기도할 수 있고, 배우자를 먼저 보낸 빈자리도 믿음의 식구들과 견딜 수 있습니다. 노년의 성도는 돌봄을 받기만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래 드린 기도와 실패를 지나며 배운 믿음, 말없이 자리를 지켜 온 세월은 젊은 세대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교회의 자산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백발 한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는 “끝까지 믿어도 된다”는 살아 있는 증언이 됩니다. 교회 안에서 노년은 쓸모가 줄어드는 계절이 아니라, 삶으로 믿음을 물려주는 계절입니다.

등불은 안개를 걷어 내지 못합니다. 길 끝까지 한꺼번에 보여 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오늘 발을 디딜 자리를 밝혀 줍니다. 그 빛이면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식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길 끝에서 기다리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백발이 되기까지 우리를 품고 가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6장 4절)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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