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지] 복음은 밑줄보다 발자국을 남깁니다
미국의 작가 A. J. 제이콥스는 어느 해 성경 읽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여기던 그가 읽고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일 년 동안 성경이 말하는 대로 가능한 한 실제로 살아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에서 그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처음부터 읽으며 규칙과 지침과 조언을 찾아 적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목록이 일흔두 쪽, 칠백 개가 넘었습니다.
십계명과 이웃 사랑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염 끝을 깎지 말라는 말씀도 있었고, 서로 다른 재료로 짠 옷에 관한 규정도 있었으며,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면도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옷감의 혼합 여부까지 살폈고, 간음한 사람을 돌로 치라는 말씀 앞에서는 작은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실제로 한 남자에게 던지는 황당한 일까지 벌였습니다. 일 년을 보내고 그의 마음에 남은 것은 수염도 옷도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이었습니다. 늘 일에 쫓기던 그는 일주일에 하루 모든 일을 멈추면서, 멈춤이 삶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돌려준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감사에도 눈을 떴습니다. 잘못된 몇 가지 일보다 이미 주어진 수많은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신앙인이 되어 책을 덮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불가지론자로 남았습니다. 다만 자신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불렀습니다. ‘경외하는 불가지론자.’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자신이 가볍게 여겼던 종교와 성경 안에 인간의 삶을 더 깊고 감사하며 절제 있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의 모든 규정을 시대와 문맥의 구별 없이 문자 그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의 실험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줍니다. 어떤 진리는 밖에서 설명을 들을 때보다 그 안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갔을 때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안식일은 그에게 처음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멈추어 보니 쉼의 의미가 보였습니다. 감사는 좋은 덕목이라는 생각에 머물렀지만, 감사하며 살아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 많으면 자신이 아는 만큼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건강 원리를 잘 설명하면서도 생활 습관은 바꾸지 않고, 자녀 교육서를 많이 읽으면서도 아이를 성적으로 판단합니다. 소통의 기술을 말하면서 가족의 말은 듣지 않고, 성경의 원어와 교리를 잘 알면서도 가까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지도를 자세히 안다고 그 길을 걸은 것은 아닙니다.
인지심리학자 레오니드 로젠블릿과 프랭크 케일은 사람들이 익숙한 사물의 작동 원리를 실제보다 훨씬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연구했습니다. 지퍼나 수세식 변기 같은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얼마나 잘 아느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꽤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에는 자신의 이해 수준을 더 낮게 평가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설명의 깊이에 대한 착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앙이 이 심리 현상과 같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돌아보게 합니다. 익숙함은 때때로 이해와 삶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한 사람 앞에 서면 내가 그 말씀을 얼마나 알고 사는지가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자리에서 그 고백은 시험을 치릅니다. 말씀을 아는 깊이는 설명할 때보다 선택할 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복음은 제이콥스가 실험한 칠백 개의 규칙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네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알리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며,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은혜를 받았기에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은혜에는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이 함께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를 경고했습니다.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은혜, 십자가를 떼어 낸 신앙입니다. 반대로 값비싼 은혜는 우리가 값을 치르고 사는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은혜이며, 동시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도록 부르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은혜이며, 동시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도록 부르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를 그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가 나무를 좋은 나무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나무이기에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열매는 나무의 자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드러냅니다. 믿음의 순종도 그렇습니다. 순종은 은혜의 값이 아니라, 은혜가 한 사람을 지나간 뒤 남는 흔적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치시며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을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차이는 지식의 양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은 들은 말씀을 행했고, 다른 사람은 듣고도 그대로 살았습니다.(마 7:24-27)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비가 내리면 놓여 있던 기초가 드러납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비가 옵니다.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 용서하기 어려울 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등입니다. 그때 드러나는 것은 내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보다 그 말씀이 내 삶의 어디까지 내려와 있는가입니다. 사과해야 한다면 전화하고, 멈추어야 할 말이 있다면 입술을 닫으며, 나누어야 한다면 손을 펴고, 기도해야 한다면 무릎을 꿇는 것은 구원을 사기 위한 값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걸어오신 은혜에 우리의 삶이 내놓는 대답입니다. 성경에 그은 밑줄은 언젠가 빛이 바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붙들려 내디딘 발자국은 한 사람의 인생에 남습니다. 도장은 종이에 찍힐 때 비로소 흔적이 됩니다. 열쇠는 주머니보다 자물쇠에서 제 일을 합니다. 복음은 밑줄보다 발자국을 남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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