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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은 돌이 닿지 않은 곳까지 갑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6. 9. 3. 08:34

[열린편지] 물결은 돌이 닿지 않은 곳까지 갑니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가 시카고대학교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훗날 하버드 의대 교수가 된 그는 죽어 가는 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면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치매로 죽어 가는 어머니를 딸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딸은 간병에 지쳐 탈진했고, 그런 아내를 걱정하던 남편까지 몸이 상했습니다. 어느 날 크리스타키스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뜻밖에도 남편의 친구였습니다. 친구가 겪는 일을 지켜보다 자신까지 우울해졌다는 것입니다. 환자는 한 사람이었지만 고통의 파문은 네 사람에게까지 번져 있었습니다. 크리스타키스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학자 제임스 파울러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주목한 것은 수십 년 동안 축적된 미국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 자료였습니다. 2007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12,067명의 관계망을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친구가 비만해지면 자신도 비만해질 가능성이 57퍼센트 높아졌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비만한 사람들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지 않고 사회적 관계망에서 세 단계 떨어진 곳까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으로 친구의 친구가 나를 살찌게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경향도 있고,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환경을 공유한 영향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도 후속 논의에서 먼 관계까지 나타나는 현상은 곧바로 인과적 ‘전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관계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2008년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와 제임스 파울러가 《영국의학저널》에 발표한 행복 연구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4,739명을 20년 동안 추적한 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관계망 속에서 서로 군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직접 연결된 사람이 행복할 경우 15.3퍼센트, 두 단계 떨어진 사람이 행복할 경우 9.8퍼센트, 세 단계 떨어진 경우에도 5.6퍼센트 더 행복할 가능성이 나타났습니다. 가까이 사는 친구가 행복해졌을 때에는 본인이 행복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흥미롭게도 행복의 관계는 불행의 관계보다 더 견고하게 나타났습니다.

옛사람들은 통계가 없을 때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진의 학자 부현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고 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묘지에서는 장례를, 시장에서는 장사를 흉내 내는 것을 보고 학교 가까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사람은 보고 듣고 곁에 있는 것을 조금씩 닮아 갑니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유명한 동조 실험도 같은 약점을 보여 줍니다. 답이 뻔한 선의 길이를 비교하는 문제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틀린 답을 말하자 참가자들은 반복해서 자신의 눈보다 다수의 판단을 따랐습니다. 원 실험의 결정적 시행에서 오답률은 평균 36.8퍼센트였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에게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의 이웃이 옆집 사람만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을 열면 수백 명, 수천 명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으로 밀려옵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분노를 읽고 함께 화를 내고, 누군가의 조롱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말투가 거칠어집니다. 화면을 끈 뒤에도 그 사람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가”만 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도 물어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부드럽게 건네면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조금 덜 날카로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여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곁에서는 감사가 자연스러워지고, 험담하는 사람 곁에서는 어느새 남의 흠을 찾는 일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돌 하나는 한 곳에 떨어지지만 물결은 그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돌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까지 갑니다.

복음도 사람을 통해 건너갔습니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고,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사람의 발과 입을 타고 마침내 로마까지 가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단순히 ‘좋은 영향을 퍼뜨리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셨고,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받을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에 붙잡힌 사람이 비로소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누구 곁에 서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더 깊이 물어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나의 말 한마디, 감사 한 번, 용서 한 번은 생각보다 멀리 갑니다. 오늘 내가 만드는 작은 물결이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사람의 마음까지 닿을 수도 있습니다. 종은 울린 자리보다 멀리 들립니다. 한 사람의 등불은 자기 자리만 밝히지 않습니다. 물결은 돌이 닿지 않은 곳까지 갑니다. 향기는 담장을 묻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15)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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