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가격표는 물건에 붙고, 이름은 사람에게 붙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6. 10. 19. 10:20

[열린편지] 가격표는 물건에 붙고, 이름은 사람에게 붙습니다

케네스 파인버그는 고엽제와 석면 소송처럼 수많은 피해자가 얽힌 분쟁을 조정해 온 미국 변호사입니다. 그에게는 돈으로 풀어야 하지만 돈으로는 풀리지 않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2001년 11월, 그는 9·11 테러 희생자 보상기금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3년 가까이 유족들을 만나 보상금을 정한 경험을 그는 훗날 『What Is Life Worth?』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생명의 값은 얼마인가'입니다.
법이 정한 계산법은 분명했습니다. 희생자가 살아 있었다면 앞으로 얼마를 벌었을지 추산해, 예상 소득이 높을수록 경제적 손실을 크게 잡았습니다. 사람의 존엄을 매기려는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에게는 그 숫자가 남편과 아버지에게 붙은 가격표처럼 보였습니다.

한 소방관의 아내가 파인버그를 찾아와 따졌습니다. 남편은 불길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숨졌습니다. 그런데 보상금은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대기업 은행가의 유족보다 적었습니다. 소방관의 월급이 은행가의 연봉보다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왜 제 남편에 대한 기억을 깎아내리십니까?" 그녀에게 보상금의 차이는 돈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목숨이 덜 귀하다는 판정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법은 소득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약 70억 달러의 보상이 끝난 뒤에도 그 물음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으로 32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그는 다시 피해자 기금을 맡았습니다. 이번에는 법이 아니라 성금으로 마련된 기금이었고, 그는 학생이든 교수든 모든 희생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했습니다. 이듬해 미국 공영라디오(NPR)에 보낸 글에서 그는 9·11 때도 모든 희생자에게 같은 금액을 주어 모든 생명이 동등하다고 선언하는 편이 더 합당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을 재난 현장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소개받으면 직업부터 묻고, 사는 동네를 듣고 나면 말투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병문안을 가서도 병상의 노인이 살아온 날보다 자녀들의 직함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입으로는 사람이 귀하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가격과 존엄을 구별했습니다. 가격이 있는 것은 같은 값의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존엄을 지닌 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고장 난 시계는 새 시계로 바꾸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자리에 더 유능한 사람을 모셔 온다고 아버지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은 오직 그 사람입니다.

더 아픈 것은 우리가 자신에게도 가격표를 붙인다는 사실입니다. 심리학자 제니퍼 크로커와 동료들은 대학원 진학을 앞둔 대학 4학년생들을 두 달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학업 능력에 자기 가치를 많이 건 학생일수록 합격 소식에 자존감이 더 크게 올라갔고, 불합격 소식에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 통지서 한 장이 자기 가치 전체를 판정하는 것처럼 느낀 것입니다.
연구는 성적을 다루었지만,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은퇴하고 명함에서 직함이 사라지면 자신까지 작아진 듯합니다. 수입이 줄어 손주에게 선물 하나 사 주지 못하면 어른 노릇을 못한 것 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형편인데, 우리는 존재의 값까지 떨어졌다고 여깁니다. 통장 잔액은 줄어들 수 있어도, 한 사람이 살아온 사랑과 수고까지 그 숫자를 따라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존엄을 소유보다 앞선 자리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창1:27). 돈을 벌기 전부터, 능력을 인정받기 전부터 사람은 귀했습니다. 일할 수 없는 노인도,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아이도 그 형상을 똑같이 지니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는 뜻깊은 대조가 있습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던 부자는 끝내 이름 없이 등장하지만, 헌데 투성이로 그 대문 앞에 버려진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눅16:19-20). 세상은 부자의 옷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거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세상의 서열이 힘을 잃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은이나 금 같은 없어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벧전1:18-19). 부자에게는 비싼 구원이, 가난한 이에게는 값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난 사람에게 비싼 구원이, 이름 없는 들풀 같은 사람에게 값싼 구원이, 큰 일은 이루고 마친 원로 목사에게 비싼 구원이, 평생 상가 교회에서 사역하다 교회와 함께 사역을 내려놓은 만년 개척교회 목사에게 값싼 구원이, 잘난 아들 둔 부모에게 비싼 구원이, 못한 아들 둔 부모에게 값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값을 치르셨고, 그 값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소방관의 아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금액이 아니라, 남편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십자가로 하셨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자리를 잃은 이웃에게, 은퇴한 어른에게, 그리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날의 나 자신에게 같은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가격표가 없습니다. 통장 잔액은 사람의 무게를 달지 못합니다. 시계는 바꿀 수 있어도 아버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10.19.

카톡펌글

존엄성 · 생명 · 가치 · 하나님의 형상 ·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