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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2025. 6. 25. 19:11

[열린편지] 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입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살다 보면 누구나 거대한 벽 앞에 서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이제는 끝이라고 느껴지는 절망의 벽. 재능의 한계, 관계의 단절, 경제적 곤궁, 예기치 않은 질병, 꿈을 가로막는 현실이라는 낙인찍힌 벽 앞에서 사람은 종종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며 삽니다. 

그러나 시인은 노래합니다. 우리가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단정 지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말입니다. 물 한 방울, 씨앗 한 톨 허락하지 않는 척박한 절망의 벽 앞에서 담쟁이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생명이 자랄 수 없는 그 절망의 벽 위에서도 담쟁이는 "말없이", "서두르지 않고", "한 뼘이라도", "함께 손을 잡고" 자라갑니다. 그저 묵묵히,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담쟁이는 혼자 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잎이 시작이 되어, 수천 개의 잎이 함께 나아갑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서로의 발판이 되어주며, 서로의 연약함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으며 한 뼘, 한 뼘 나아갑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벽을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고” 푸른 생명으로 온전히 덮어버립니다. 절망의 벽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희망의 벽으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라는 고립감에 갇혀 절망할 때, 우리는 벽 아래 주저앉고 맙니다. 그러나 내 옆에서 함께 손잡아 주는 이웃이 있고, 나의 작은 어깨에 기꺼이 자기 손을 얹어주는 동료가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용기가 다른 이에게 전달되고, 그 연쇄적인 격려가 모여 마침내 공동체는 불가능해 보였던 거대한 벽을 넘어서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 것”입니다.

절망의 벽 앞에서 주저앉아 계십니까? 너무도 막막하여 한 걸음도 뗄 수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손을 내미십시오. 또한 당신을 향해 내민 손을 잡아주십시오. 우리의 연약한 손들이 서로 맞잡을 때, 그곳에서부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가장 강한 힘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절망의 벽 앞에서 무엇보다 항상 손을 내밀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크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손을 외면하지 마시고 어떤 절망의 벽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손을 잡아 보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멸망한 조국의 예루살렘 성벽이라는 절망의 벽 앞에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의 폐허 위에서도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선한 손’이 있었기에, 백성들은 두려움 대신 용기를, 포기 대신 건축을 선택했습니다. 담쟁이처럼 절망의 벽 앞에서 움츠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느2:18-20).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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